신성화 - 알렉산드라 데이비드-닐의 영적 에너지 시각화 (2019)

Alexandra david neel Low
'이 신성화 이미지는 2019년에 'Tistory Blog'에 포스팅되었으며 자료 통합과 정리를 위해 업로드합니다.'

알렉산드라 데이비드-닐의 신성화에 대한 간략한 설명

알렉산드라 데이비드-닐의 신성화에는 조용하지만 강한 힘이 담겨 있다. 그녀는 힘든 길이 결국 우리를 꼭 필요한 곳으로 데려간다는 것을 알았다. 처음 보기에 그림은 간단해 보인다. 어쩌면 평범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명상을 통해 더 깊은 의미가 드러났다. 영적 메시지는 한 가지를 계속해서 가리켰다. 그녀가 지니고 스스로 마주하기로 택한 고통의 세계였다. 이것은 자기 벌이나 희생이 아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평생 피하려 애쓰는 것을 그녀는 직시했다. 바로 고통이 진정한 성장의 문이 된다는 사실이다.

알렉산드라에게 고통은 적이 아니었다. 두 눈을 크게 뜨고 끝까지 걸어야 할 길이었다. 그녀에게 고통은 빛으로 변했다. 101세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도 새로운 여행을 준비하던 사람, 그런 존재였다.

그녀의 신성화에는 가슴 중앙에 ‘빛의 상징’이 나타난다. 가장 깊은 진실이 머무는 자리다. 이 빛은 진정성과 힘든 일까지도 감싸 안는 포용을 떠올리게 한다. 그녀의 ‘영적 중심’은 왼쪽으로 도는 소용돌이 모양으로 나타난다. 그 위로 ‘나선 에너지’가 영적 세계를 향해 솟아오른다. 꼭 그녀의 본질 자체가 아직 오르고, 뻗어나가며, 완성되어 가는 듯하다.

세상의 지붕을 걸어간 여자

1920년대, 50대 중반의 작은 키 여성 한 명이 눈 덮인 히말라야 산길을 티베트 거지로 변장해 조용히 건넜다. 낡은 부츠는 닳을 대로 닳아 있었다. 도망치는 것이 아니었다. 알렉산드라 데이비드-닐은 티베트의 금기된 도시 라싸에 서구 여성으로는 최초로 발을 들이려는 뜻을 품고 있었다.

태어날 때부터 떠돌이였던 사람

1868년, 파리 근교에서 태어났다. 빅토리아 시대 여성들이 조용하고 예의 바르게 살도록 강요받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알렉산드라는 태어날 때부터 달랐다. 어릴 적부터 머릿속엔 늘 낯선 세상을 향한 갈망이 가득했다. 자유사상을 신봉하던 부모 밑에서 자라, 반항적인 기질과 멈추지 않는 여행 욕구를 물려받았다.

열여덟 살 때, 그녀는 모두를 놀라게 했다. 할머니가 남긴 유산을 들고 혼자 인도로 떠난 것이다. 돈이 떨어졌을 때도 포기하지 않고, 오페라단에 들어가 노래를 하며 북아프리카를 누볐다. ‘알렉산드라 미리알’이라는 예명으로 《카르멘》, 《라 트라비아타》 등 유명 오페라를 공연했다.

자신의 방식으로 맺은 결혼

튀니지에서 만난 필리프 네엘은 철도 기술자였고, 훗날 남편이 되었다. 하지만 그들의 관계는 평범한 사랑 이야기가 아니었다. 알렉산드라는 1904년에 벌써 성을 하이픈으로 연결해 ‘데이비드-닐’이라 썼을 정도로 진보적이었다. 대부분 장거리 연애였던 결혼 생활에서 필리프는 아내가 집에 머무르는 여성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그는 그녀가 떠나는 여행을 묵묵히 지지했다.

1911년 무렵, 알렉산드라는 프랑스에서 동양 종교에 대한 강연으로 이름을 알렸다. 교육부의 지원을 받아 인도에서 산스크리트어를 공부하기 위해 떠났다. 학문을 위한 여행이었지만, 곧 그녀 인생을 바꾸는 14년간의 대장정이 시작되었다.

달라이 라마를 만나고 아들을 얻다

곧 알렉산드라는 서양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13대 달라이 라마를 만났다. 달라이 라마는 그녀에게 티베트어와 불교 철학을 가르쳐 주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곳에서 어린 승려 아푸르 용덴을 만난 것이다. 그와의 관계는 스승과 제자를 넘어 가족으로 발전했고, 그녀는 결국 그를 입양했다.

그 후 거의 2년 동안 그들은 시킴 산속 동굴에서 살았다. 겨울 추위를 막기 위해 딱 한 겹의 면 셔츠만 걸친 채 명상과 불교 경전을 공부했다. ‘툼모’라 불리는 티베트 승려들의 ‘내면의 불길’을 일으키는 명상법을 터득해 혹독한 추위도 견뎠다.

라싸로 향한 금기 깨기

그럼에도 알렉산드라의 가장 큰 꿈은 아직 남아 있었다. 외국인, 특히 서양 여성은 철저히 금지된 티베트 수도 라싸에 가는 일이었다. 55세, 은퇴가 넘보기 시작할 나이에 그녀는 불가능을 목표로 삼았다. 용덴과 함께 가난한 티베트 순례자로 변장해 몇 달간 위험한 산길을 걸었다. 얼어붙은 강을 건너고 매서운 바람을 견뎌냈으며, 늘 발각될 위험과 싸웠다. 그녀는 피부를 어둡게 물들이고 머리카락을 검게 염색했으며, 현지 여성의 걸음걸이와 말투를 따라 배웠다. 마침내 1924년, 남서양 여성이 여태 가본 적 없는 라싸에 도착했다.

이야기꾼과 의심하는 이들

후에 알렉산드라는 여행과 불교 공부에 관한 30권이 넘는 책을 출간했다. 《내 라싸 여행》과 《티베트의 마법과 신비》는 생생한 묘사와 경이로움으로 전 세계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러나 모두가 그녀의 이야기를 믿은 것은 아니었다. 학자 잔느 드니 같은 이는 그녀의 모험을 과장하거나 꾸며낸 것이라 비판했다. 드니는 알렉산드라가 라싸에 가지 못했다며 수년간 의혹을 제기했다. 하지만 후에 많은 부분이 사실로 입증되었다. 어쩌면 의심은 사실보다는 스타일에서 기인했다. 그녀의 책은 신비와 영적 깨달음으로 가득해, 남성 탐험가들이 선호하는 건조한 학문적 어투와 달랐다.

고향으로 돌아와도 멈추지 않다

78세가 되던 1946년에야 비로소 프랑스로 돌아왔다. 그러나 그녀는 결코 멈출 준비가 되지 않았다. 90대까지 글을 쓰고 강연했으며, 자신이 설계한 티베트풍 집에서 살았다.

그녀의 영향력은 유럽 문학계를 넘어 비트를 대표하는 작가 잭 케루악과 앨런 긴스버그에게까지 미쳤다. 티베트 불교를 서구에 소개한 선구자였고, 현재 달라이 라마 역시 그녀가 티베트와 서구 간 이해를 넓히는 데 크게 기여했다고 인정한다.

1969년, 101세 생일을 두 달 앞두고 세상을 떠났다. 두 차례의 세계 대전, 벨 에포크 시대, 1960년대의 문화 혁명을 모두 겪은 그녀는 결코 평탄하지 않은 길을 걸었다. 깐깐하고 고집이 세며 때로는 자아도취적인 면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용기 있고 호기심 많았으며 세상에 마음을 활짝 열어젖힌 사람이었다.

그녀의 이야기는 말한다. ‘허락받아야 할’ 이유는 없다. 때로는 ‘불가능’이라는 단어를 모른 체, 그저 발을 내딛는 용기만 있으면 된다고. 낡은 부츠를 신은 채, 떠나는 순간 가장 위대한 여정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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