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화 — 헬레나 페트로브나 블라바츠키의 영적 에너지 시각화 (2020)

Helena Petrovna Blavatsky Low
'이 신성화 이미지는 2020년에 'Tistory Blog'에 포스팅되었으며 자료 통합과 정리를 위해 업로드합니다.'

신성화: 헬레나 블라바츠키에 대한 해설

블라바츠키의 '신성화'는 첫눈에 보는 순간 압도적인 존재감으로 시선을 사로잡는다. 그녀의 '영적 중심'에서 뿜어져 나오는 거대한 '빛의 상징'이 '나선 에너지'와 함께 어우러져 보는 이로 하여금 숨이 막힐 정도의 강력한 기운을 느끼게 한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바로 그녀의 손이다. '신성화'에서 손은 재능과 창조적 힘을 나타낸다. 각 손가락 끝에서 흘러나온 '나선 에너지'가 아래쪽 물질 세계로 떨어져 내린다. 특히 새끼손가락에서 뻗어나온 에너지 줄기들이 곡선을 그리며 방향을 바꾸어 반대편 손의 새끼손가락과 연결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이는 그녀의 재능이 영적 힘과 결합하여 세상에 다양한 방식으로 영향을 미쳤음을 보여준다.

그녀의 몸 양옆에서 마치 보초를 서듯 지키고 서 있는 보호막 같은 생동감 넘치는 노란색 에너지장도 놓칠 수 없는 부분이다.

두 번째 '신성화'를 보면 더 많은 것들이 드러난다.

Helena Petrovna Blavatsky 2 Low

왼쪽 아래편에는 여덟 개의 뚜렷한 점들로 이루어진 독립적인 에너지 형태가 자리 잡고 있는데, 이것이 블라바츠키의 에너지 중심점들과 주요 신체 부위들에 직접 연결되어 있다. 마치 이 형태가 그녀의 시스템에 힘을 공급해주는 것처럼 보인다. 왼쪽 위편의 작은 에너지 존재는 그녀의 '영적 중심'을 통과해 흘러가며 물질 세계로까지 이어진다.

과연 이런 에너지 형태들이 그녀가 글로 남긴 상승한 스승들을 뜻하는 것일까? 아니면 정체를 알 수 없는 전혀 다른 존재들일까?

종교 단체들은 종종 블라바츠키를 사탄주의자라고 낙인찍곤 했다. 하지만 정말 그런 것일까? 루시퍼에 대한 그녀만의 해석은 아래 글에서 다루고 있다.

헬레나 페트로브나 블라바츠키: 세계의 영적 지도를 바꾼 여인

오늘날 어느 서점에 들어가더라도 수정치유나 명상, '내 안의 여신 찾기' 같은 책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런데 이런 책들이 존재할 수 있게 만든 것은 1848년 정혼에서 도망친 한 러시아 귀족 여성 때문이었다. 헬레나 페트로브나 블라바츠키는 단순히 결혼식에서 도망친 것이 아니라, 오늘날까지도 우리가 신앙과 과학, 그리고 신비에 대해 생각하는 방식을 바꾼 영적 혁명의 불씨를 지핀 인물이다.

블라바츠키는 가정교사들에게 악몽 같은 존재였다. 1831년 러시아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난 그녀는 또래 소녀들이 단정한 자수를 배우고 있을 때 증조할아버지 서재에서 신비학 서적을 탐독하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17세에 부모가 나이 많은 귀족과의 혼약을 정해주자 그녀는 자존심 있는 젊은 여성이라면 당연히 할 일을 했다. 바로 도망친 것이다. 그 도주는 그녀를 19세기 가장 유명한 신비주의자로, 그리고 보는 이에 따라서는 천재적인 영적 개척자 아니면 역사상 가장 성공한 사기꾼으로 만들어버렸다.

대모험의 시작

그 다음 일어난 일들은 순전히 모험 소설 같은 이야기다. 블라바츠키는 20년 동안 세계 각지를 돌아다니며 신비로운 티베트 스승들을 만나 고대의 비밀을 배우고 초자연적 능력을 기른다고 주장했다. 그녀는 티베트 산속에서 '쿠트 후미'와 '모리야 마스터'라는 영적 스승들을 만나 텔레파시와 투시력을 배웠다고 말했다. 문제는 대부분의 역사학자들이 이런 여행들이 거의 허구라고 보고 있다는 점이다. 그녀가 이 시기 대부분을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보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진실이든 상상이든, 블라바츠키는 이 시기를 거쳐 어떤 방에서든 사람들을 매혹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되었다. 그녀는 타고난 이야기꾼이었고 어디서인가 습득한 세계 종교에 대한 백과사전적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1870년대에는 미국의 심령술 모임에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당시 사람들은 탁자 주위에 모여앉아 신비한 노크 소리나 두드림을 통해 죽은 친척들과 대화를 나누기를 희망했던 시대였다.

혁명적인 것의 탄생

1875년, 뉴욕의 한 응접실에서 블라바츠키는 수세기에 걸쳐 울려 퍼질 일을 해냈다. 미국 언론인 헨리 스틸 올코트와 윌리엄 콴 저지와 함께 신지학회를 창설한 것이다. 그들의 사명은 그 야심찬 시대에도 대담한 것이었다. "과학과 종교, 철학의 종합"을 이루고 "인종과 신념, 성별, 계급, 피부색을 가리지 않는 인류 보편 형제애의 핵심"을 형성하겠다는 것이었다.

이것은 단순한 사교 모임이 아니었다. 신지학회는 동양의 종교들, 즉 힌두교와 불교가 기독교로 대체되어야 할 원시적 믿음이 아니라 서구가 배워야 할 더 오래되고 잠재적으로 더 지혜로운 전통이라고 진지하게 주장한 최초의 주요 단체가 되었다. 대부분의 유럽인과 미국인이 동양 문화를 뒤떨어지고 계몽이 필요한 것으로 여기던 시대에 이것은 혁명적인 사고였다.

아메리카와 기이한 명성

블라바츠키가 1873년 마흔두 살의 나이로 미국에 도착했을 때, 그녀는 수십 년간 쌓아온 신비로움을 몸에 두르고 있었다. 당시 미국은 심령술 열풍에 깊이 빠져 있었다. 응접실에서 벌어지는 교령회(交靈會)가 다과회만큼이나 흔해졌고, 사람들은 죽은 자들과 대화하려고 안달이었다. 이 운동은 1848년 뉴욕 주 북부에서 폭스 자매가 탁자를 두드리는 소리로 시작됐는데, 수천 명이 죽은 자들이 살아있는 자들과 소통하려 한다고 믿게 되었다.

블라바츠키는 다른 접근법을 택했다. 다른 영매들이 죽은 영혼들을 불러낸다고 주장하는 동안, 그녀는 자신의 '소통'이 살아있는 대스승들, 즉 외딴 산속 수행처에 있는 깨달은 존재들로부터 온다고 주장했다. 심령술 현상을 연구하던 변호사 헨리 스틸 올코트와 손을 잡았고, 이들은 함께 자신들의 삶을 바꾸게 될 일을 벌였다.

1875년 뉴욕에서 신지학회(神智學會)를 창립했는데, 과학과 종교, 철학을 종합한다는 야심찬 목표를 내세웠다. 블라바츠키의 첫 주요 작품인 『베일을 벗긴 이시스』가 1877년 서점에 나왔는데, 1200페이지나 되는 이 두꺼운 책이 순식간에 매진됐다. 비평가들은 표절이라고 소리쳤고, 지지자들은 혁명적이라고 불렀다.

교령회의 어두운 면

심령술 열풍은 단순한 응접실 유희가 아니었다. 블라바츠키가 반복적으로 경고했던 위험한 이면이 있었다. 역사가들이 빅토리아 시대 교령회 전염병이라고 부르는 이 현상은 사기꾼들을 끌어들였고, 진짜 정신적 피해를 남겼다. 영매들은 신경쇠약에 걸렸고, 참가자들은 죽은 자와의 접촉에 집착하게 됐다.

블라바츠키는 이런 일들을 직접 목격하고 그녀가 '영적 기생'이라고 부른 것에 대해 경종을 울렸다. 즉, 어떤 존재들이 영매와 참가자들을 먹이로 삼는다는 생각이었다. 교령회 방에 '영혼 없는 피조물들'과 '아스트랄 껍질들'이 배회한다는 그녀의 경고는 연극적인 과장이 아니라 그녀가 실재한다고 믿었던 위험에 대한 진지한 주의였다.

루시퍼 문제

1887년 런던에서 발행한 잡지 이름을 '루시퍼'로 정한 것만큼 오해를 불러일으킨 것도 없었다. 이건 의도적인 도발이었지만, 비평가들이 생각한 것과는 달랐다. 그녀는 고대 상징을 되찾으려 했다. 루시퍼를 새벽별, 빛을 가져오는 자로 본 것이다. 라틴어로 '룩스'(빛)와 '페레'(나르다)에서 온 말이었다.

초기 기독교도들은 예수를 새벽별이라고 불렀다. 사탄과의 연결은 훨씬 나중에, 주로 밀턴의 『실락원』을 통해서 생긴 것이다. 블라바츠키는 원래 의미를 되살리려 했다. 새벽을 알리는 계몽자 말이다. 그래도 이 이름은 빅토리아 시대 사람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에 대한 놀라운 순진함이나 완고한 반항심을 보여준다.

세상을 뒤흔든 책들

블라바츠키는 자신의 생각을 말하는 것에만 만족하지 않았다. 그녀는 오늘날까지도 읽히는 방대하고 광범위한 책들로 자신의 사상을 담아냈다. 1877년에 출간된 『이시스 언베일드』가 첫 번째 센세이션이었고, 1880년대에는 『비밀 교의』가 뒤따랐다. 이 책들은 가벼운 읽을거리가 아니었다. 고대 이집트의 신비부터 힌두 철학, 최첨단 과학까지 모든 것을 엮어서 한때 인류의 영적 전통들을 연결했던 "고대 지혜 종교" 이론으로 감쌌다.

이 책들은 즉각적인 히트작이 되었지만 격렬한 비판도 불러왔다. 학자들은 그녀가 기존의 불교와 힌두교 텍스트에서 직접 자료를 베꼈다며 표절이라고 비난했다. 기독교도들은 조직화된 종교에 대한 그녀의 공격에 분노했다. 과학자들은 그녀를 사기꾼으로 치부했다. 이런 부정적 관심도 판매나 그녀를 따르는 신도들의 열정을 식히지는 못했다.

끝나지 않는 논란들

블라바츠키의 초자연적 현상에 대한 명성은 그녀를 유명하게 만들었지만 동시에 표적으로도 만들었다. 그녀는 티베트 스승들의 편지를 허공에서 나타나게 하고 천장에서 장미비를 내리게 하며 유령의 머리를 방 안에 떠다니게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수년간 사람들이 이런 기적을 목격하려고 몰려들었다.

그러다 1884년 재앙이 닥쳤다. 인도에서 그녀를 도우던 엠마와 피에르 쿨롱 부부가 공개적으로 그녀를 사기꾼이라고 고발한 것이다. 그들은 블라바츠키가 비밀문과 손재주, 숨겨진 장치들을 사용해 기적적 현상들을 조작하는 방법을 자신들에게 정확히 지시했다는 편지들을 증거로 제시했다. 스캔들은 신문들에 터져 나왔고 블라바츠키의 명성은 완전히 회복되지 못했다.

심령 연구 협회가 조사를 벌여 그녀가 정말로 허풍쟁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수십 년 후 다른 연구자들이 이런 조사 결과에 이의를 제기하기도 했다. 블라바츠키는 조사가 끝나기 전에 기후가 건강에 해롭다며 인도를 떠났다. 그녀는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지속되는 유산

논란에도 불구하고 서구 영성에 대한 블라바츠키의 영향은 엄청났다. 그녀는 오늘날 당연하게 여겨지는 사상들, 즉 카르마와 환생, 명상, 그리고 모든 종교가 같은 본질적 진리의 씨앗을 담고 있다는 믿음을 수백만 명에게 소개했다. 블라바츠키 이전에 대부분의 미국인과 유럽인들은 힌두교 구루나 불교 승려로부터 배우는 것을 진지하게 고려해본 적이 없었다.

그녀는 또한 그런 역할이 거의 남성의 전유물이던 시대에 여성의 영적 지도력을 개척했다. 독신으로 세계를 여행하며 영적 스승으로서 존경받는 단독 여성으로서 그녀는 여성도 강력한 종교 지도자가 될 수 있음을 증명했다.

그녀의 영향력은 영성을 훨씬 넘어섰다. T.S. 엘리엇과 W.B. 예이츠 같은 작가들, 토마스 에디슨 같은 발명가들, 심지어 간디 같은 정치 지도자들도 그녀의 가르침에서 가치를 발견했다. 동서양의 영적 관습들을 절충적으로 혼합한 현대의 뉴에이지 운동은 그 DNA의 상당 부분을 블라바츠키의 획기적인 작업에서 찾을 수 있다.

신비 뒤의 여인

블라바츠키를 매력적으로 만든 것은 단지 그녀의 사상이 아니라 그녀의 성격이었다. 그녀는 총명하고 무모하며 전혀 타협하지 않았다. 한순간은 매혹적이었다가 다음 순간엔 파괴적이었다. 담배를 줄담배로 피우고 뱃사람처럼 욕을 해댔으며 싸움에서 절대 물러서지 않았다. 여성들이 얌전하고 가정적이기를 기대받던 시대에 그녀는 그런 것과는 정반대였다.

그녀를 비판하는 이들은 사람들의 영적 갈망을 개인적 이익을 위해 착취하는 조작적인 사기꾼으로 여겼다. 그녀를 지지하는 이들은 절망적인 세상에 고대의 지혜를 가져오기 위해 모든 것을 걸고 용감하게 진실을 말하는 사람으로 봤다. 진실은 흔히 그런 거대한 인물들에게서 그렇듯이 아마 그 중간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끝나지 않는 의문들

1891년 그녀가 세상을 떠난 지 한 세기가 넘도록 헬레나 페트로브나 블라바츠키는 역사상 가장 수수께끼 같은 인물 중 하나로 남아 있다. 그녀가 정말로 티베트에 가서 깨달은 스승들과 공부했을까? 그녀의 초자연적 현상들이 진짜 초자연적 발현이었을까, 아니면 교묘한 속임수였을까? 그런 것이 중요할까?

부인할 수 없는 것은 수백만 명이 영성과 과학, 종교 전통들 사이의 연결에 대해 생각하는 방식에 끼친 그녀의 영향이다. 그녀는 교회 옆에 요가 스튜디오가 자리 잡고, 사람들이 다른 전통들에서 자유롭게 지혜를 빌려오며, 영적 진리 추구를 종교 권위자들이 지시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적 여정으로 보는 세상을 만드는 데 도움을 주었다.

그녀를 선지자로 보든 허풍쟁이로 보든, 헬레나 블라바츠키는 의심할 여지없이 인간 사상의 궤도를 바꾼 흔치 않은 개인 중 하나였다. 그녀는 학술 영역과 고대 텍스트에 갇혀 있던 사상들을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에서 의미를 찾고 있던 보통 사람들이 접근할 수 있게 만들었다. 그런 과정에서 그녀는 19세기 심령술사 역사의 각주가 아니라 오늘날 영적 풍경의 기초적 인물이 되었다.

그녀의 이야기는 때때로 심오한 변화가 예상치 못한 곳에서 온다는 것을 우리에게 상기시켜 준다. 그리고 때로는 불가능한 꿈을 가진 도망친 신부가 세상에 자기 자신을 보는 새로운 방법을 보여주는 데 필요하다는 것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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