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화 — 한국의 관세음보살인 본주, 인정상관의 영적 에너지 시각화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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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신성화 이미지는 2021년에 'Tistory Blog'에 포스팅되었으며 자료 통합과 정리를 위해 업로드합니다.'

본주(本主)라고도 불리는 인정상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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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주, 인정상관

작년 겨울, 김제 금산사에서 명상을 마치고 나온 후 입구 근처에 있다는 인정도덕원을 찾아갔다. 인정도덕원 표지판을 지나자 인정상관님의 생가가 나타났는데, 마침 아무도 계시지 않아 궁금한 것을 여쭐 수 없었다. 문이 잠겨있지 않아 조심스럽게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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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정상관님이 생전에 신으셨던 것으로 보이는 신발이 모셔져 있었다. 신발은 헤지도록 신으셨던 흔적이 역력했다. 아궁이가 있는 전통식 부엌도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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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스럽게 절을 올리고 합장으로 예를 갖춘 후 뒤로 물러났다. 겨울에는 문지방 사이로 찬바람이 제법 들어올 텐데, 인정상관님은 솜이불 하나 제대로 덮지 않고 지내셨다고 한다.

≪본주대경전≫이었다. 생가 옆에 사무실로 보이는 곳이 있어 경전을 구할 수 있을까 생각했지만, 마침 아무도 계시지 않아 그냥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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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정상관님을 알게 된 것은 증산 사상의 뿌리인 강증산 선생의 신성화 작업을 준비하면서 자료를 알아보던 중이었다. 인정상관님의 신성화는 영적 중심과 세상 중심에서 발하는 에너지의 장이 너무 커서 종이를 추가하여 그림을 옆으로 모두 확장해야 했으며, 총 7장의 종이가 사용되었다. 현재 드러난 인정상관님의 신성화 에너지 구조는 전체에서 극히 일부에 불과함을 밝혀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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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증산 사상을 다루는 여러 단체들이 복잡하게 얽혀있고, 진짜 법맥과 가짜 법맥, 그리고 법맥의 연원에 대해서는 서로 간에 의견 차이가 심하며 매우 예민한 문제이므로 인정상관님에 대한 개인적인 견해는 적지 않았다. 인정상관님의 신성화에 대한 설명도 생략하였다. 그동안 신성화 블로그를 보아오신 분들이라면 충분히 알아보실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Quote

"말과 행동은 천지(天地)에서 보고 있으니 깊이 생각하고 말을 아껴야 하며, 호언하고 실행치 않으면 죄가 된다. 애 쓴 것 몰라 준다고 한탄해서는 안 돼. 애쓰면 애 쓴 만큼 덕이 되고 복이 된다.

너희들은 몰라도 신명(神明)은 알어! 도(道) 닦는다고 조용한 곳에 길들여지면 음지(陰地) 식물이 되어서 햇빛을 보면 시들해 져! 참다운 수행을 할려면 생활 속에서 궁구하고 마음을 바루고 덕행을 해야 해!"

“신명이 들판에 나락 모(茅) 서 있듯 많고 많아. 사람의 행동 하나 하나 관찰하고 있는 신명이 있으니 좋은 일 많이 해!

신명 대접할 때에 골고루 한다고 적게 올리지 말고 한 두가지라도 많이 올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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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스러운 탄생

1887년 3월 19일, 경남 하동군 화심리에 한 아이가 태어났다. 어머니 이씨는 이미 세 아들을 어린 나이에 잃은 슬픔을 안고 있었다. 사십이 넘은 나이의 부부는 지리산 천왕봉에 올라 맑은 샘물인 청수(淸水)를 하늘과 신령에게 올리며 간절히 기도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남편이 세상을 떠났다.

삼 년 상을 치른 뒤, 이씨는 다시 천왕봉을 찾았다. 목이 마른 그녀가 산골 샘물을 마시는 순간, 무언가가 목구멍으로 들어오는 것을 느꼈다. 뜨거운 기운이 온몸을 감쌌고, 산에서 내려오며 뒤돌아보니 큰 무지개가 하늘을 가로질렀다. 그 찬란한 모습에 넋을 잃고 바라보던 그날 밤, 꿈에 둥근 달이 가슴으로 들어오며 "만 명의 아들을 둔 것을 부러워하지 말라"는 음성이 들렸다.

곧 그녀는 임신했다. 해산 때가 되자 낯선 여인 둘이 나타나 도움을 주었다. 그런데 태어난 아이는 사람의 아기라기보다는 기이한 짐승에 가까웠다. 온몸이 은빛으로 빛나는 털로 덮여 있었고, 등에서 엉덩이까지는 검고 윤이 나는 무늬가 있었다. 코는 코끼리처럼 길고 손발은 발굽 모양이었으며, 눈은 날카롭게 빛났지만 울음소리는 내지 않았다.

놀라 기절하려던 이씨를 부축하며 두 여인이 말했다.

"이 아이는 다름 아닌 *구천상제(九天上帝)* 께서 맥(貊)의 모습으로 당신의 몸을 빌어 태어나신 것입니다. 때가 되면 이 껍질을 벗으실 테니 두려워하지 말고 정성껏 기르십시오. 아이가 말을 시작하면 그 말씀을 잘 들으시기 바랍니다."

그러고는 두 여인이 사라졌다.

때는 1887년, 고종 24년이었다. 같은 해 영국이 제국주의적 야욕으로 우리나라 남쪽 섬인 거문도를 점령했다가 마침내 철수한 해이기도 했다.

구천상제: '구천상제'(九天上帝)는 한국의 신종교에서 아홉 번째 하늘의 최고신으로 받들어진다. 이 신은 우주를 이끄는 지도적 존재로 여겨지며, 강증산의 삶과 가르침과 깊은 연관을 맺고 있다. 다만 기적이나 과도한 주장을 내세우지는 않는다.

맥(貊)의 의미

Maek

맥(貊)은 동양 전설에 나오는 신비한 짐승으로, 구리나 철을 먹고 살았다고 전해진다. 『본초강목』에 따르면 "곰 같은 몸에 사자 머리를 가졌고, 털은 승냥이와 비슷했다. 갈기는 날카로우며 다리는 짧았다. 그 똥으로 칼을 만들면 옥도 자를 수 있고, 오줌은 쇠를 녹여 물로 만들 수 있다"고 했다.

이 신성한 짐승은 인간을 질병으로부터 보호하고 생명을 보존하며 지혜를 깨우는 존재로 여겨졌다. 동굴의 습기를 없애고 해로운 귀신을 쫓아냈으며, 사람들과 함께 다니며 맹수와 독충을 물리쳤다.

맥이 광물을 찾아 돌을 칠 때 불꽃이 튀었는데, 이를 통해 인류가 처음 불을 발견했다고 한다. 나중에 그 불을 이용해 쇠를 녹이고 도구를 만드는 법을 배웠다. 그래서 옛 조선 사람들은 맥을 신의 은혜를 베푸는 존재로 받들었다. 중국 사가들은 조선 민족을 '맥족'이라 불렀고, 조선의 활을 맥궁이라 하여 그 뛰어난 솜씨와 위력을 인정했다.

오늘날에도 그 흔적이 남아 있다. '액막이'나 '살막이' 같은 우리말은 모두 맥의 보호 능력에서 비롯된 것이다.

숨겨진 어린 시절

짐승의 털로 덮인 아이를 낳았기 때문에 이씨는 바깥 사람들과의 접촉을 피했다. 그런데 아이는 신기한 능력이 있어서 손님이 오면 스스로 숨어 소리 하나 내지 않았고, 사람들이 가고 나서야 모습을 드러냈다.

일곱 살이 되던 해, 아이는 그 짐승의 형상을 벗어던졌다. 발굽 같던 손으로 머리를 긁더니 한 번에 껍질을 벗어버리자, 그 안에서 맑고 아름다운 인간 소녀의 모습이 나타났다.

이씨가 그 벗겨진 껍질을 없애려고 할 때마다 가슴이 두근거리고 다리에 힘이 빠져 꼼짝할 수 없었다. 그런 생각만 하면 천둥번개가 치는 꿈을 꾸어서 감히 손대지 못했다.

어느 날 아이가 처음으로 말했다. "제 옷을 주세요." 깜짝 놀란 이씨가 그 껍질을 건네주자, 소녀는 정성스럽게 접어서 보자기에 싸서 궤짝 깊숙이 넣어두었다.

보천교와의 만남

1919년 3·1운동이 실패로 끝난 뒤 민족의 절망은 깊어만 갔다. 정읍에 나라를 되찾고 평화를 가져다줄 큰 인물이 있다는 소문이 퍼졌다. 그가 바로 월곡이라 불리던 차경석이었다. 키가 구 척이나 되는 장대한 체구에 위엄과 카리스마를 갖춘 인물이었다.

일제강점 이후 차경석은 *태을주 염송을 중심으로 한 비밀 종교 단체인 태을교를 만들었다. 몇 년 만에 수만 명이 참여했고, 1920년대 초에는 보천교(普天敎)라 이름을 바꾸어 신도가 50만 명을 넘었다.

1921년 9월, 차경석은 함양 황석산에서 대규모 천제(天祭)를 지냈다. 당시 기록에 따르면 아홉 층 제단에 소 일곱 마리와 돼지 스물세 마리를 바쳤다고 하니 그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그 제사를 지내는 도중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김정화의 기록에 따르면 다음과 같다.

"차 월곡이 제를 지내고 있는데 갑자기 인정상관이라는 여인이 나타나 '까마귀들(일본 경찰을 뜻함)이 온다. 빨리 피하라'고 하고는 사라졌다. 그가 범상치 않은 여인이 아니라 신의 사자임을 깨달은 차 월곡은 급히 피해 체포를 면했다. 나중에 그녀를 찾으려 했지만 찾을 수 없어서 신령으로 여겼다."

그때까지 그 소녀는 성인이 되어 있었다. 스스로를 인정상관(仁政上觀)이라 불렀고, 때로는 아무도 알아들을 수 없는 신비한 언어로 말하기도 했다.

태을주: 태을주는 한국에서 전해져온 신성한 주문이다. 한자로는 太乙呪라고 쓰는데, '크고 위대한 원초적 주문'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정읍으로 이주

그녀의 영적 기운을 알아본 사람 중에는 영천의 감역(監役) 권 씨가 있었다. 친구 집에서 그녀의 얼굴을 본 순간 하늘의 기운을 품고 있음을 직감했다. 그녀를 자기 집안으로 데려오려고 과부가 된 아들과 혼인시키려 했다.

하지만 인정상관은 거절했다. 권 씨가 예물과 혼서를 들고 사람을 보내자, 어머니는 인력거를 불러 피하려 했다. 궤짝에서 그 털 뭉치를 꺼내 든 인정상관이 도망치려 하자 권 씨의 사람들이 인력거를 부수고 길을 막았다. 어머니를 꼭 끌어안은 인정상관이 속삭였다.

"눈을 꼭 감고 뜨지 마시소."

갑자기 거센 바람이 불어왔다. 이씨 부인은 공중으로 떠오르는 것을 느꼈지만 무서워서 눈을 뜰 수 없었다. 마침내 바람이 그치자 딸이 말했다.

"인제 눈 뜨시소. 여기가 전라도 정읍 땅이라예."

눈을 뜨니 추격자들은 사라지고 정읍 대흥리의 오래된 느티나무 아래 서 있었다. 그곳에서 이미 황석산에서의 인정상관 이야기를 들은 보천교 간부 김홍규를 만났다.

해인에 관한 대화

보천교가 마련해준 집에 살면서 인정상관은 교주 차경석과의 혼인을 권하는 말을 계속 들어야 했다. 그때 그녀가 물었다.

"자네들 선생한테 해인(海印, ‘Seal of the Sea’)이 있다 하던가?"

당황한 신도들이 "그런 게 어디 있겠습니까?"라고 답하자 그녀가 말했다.

"그에게 해인도 없다는데 자네들이 우예 대사를 꾀한다 하노? 맘 고쳐묵고 돌아들 가.

인정상관이 말한 해인은 범상한 물건이 아니라 하늘의 명령을 뜻하는 신성한 보물이었다. 고서 『부도지』에 따르면 옛날 여러 부족이 방장산에 모여 하늘의 뜻을 일곱 빛깔 보석에 새겨 방장해인을 만들었다고 한다. 이 인장은 모든 재앙을 물리치고 신의 권위를 상징하는 것이었다.

해인을 들먹이며 인정상관은 자신을 얽매려는 이들을 물리쳤고, 진정한 하늘의 인장 없이는 그들의 운동이 정당성을 갖지 못한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더 다그쳐서 받은 도움에 보답하라고 하자 그녀는 간단히 답했다.

"어찌 그것이 그대들 것인가? 천지 것이다."

*해인: 동아시아의 고대 지혜 속에는 '해인(海印)'이라는 아름다운 개념이 있다. 바다를 뜻하는 해(海)와 도장이나 인장을 의미하는 인(印)이 만나 만들어진 이 말은, 두 가지 다른 전통에서 각각 깊은 의미로 쓰인다. 바로 증산도의 영적 철학과 불교의 명상 수행 전통에서 말이다.

이 말 자체가 하나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해는 바다, 인은 도장이나 인장을 뜻한다. 이 둘이 합쳐져서 깨달은 마음이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보여주는 그림을 그려낸다. 바다가 완전히 잔잔해졌을 때, 구름도 산도 하늘을 나는 새도 모든 것이 그 표면에 고스란히 비친다. 판단이나 방해 없이 말이다. 깨달은 의식이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이 바로 이와 같다.

불교 가르침에서 해인은 개인적인 의견이나 감정적인 반응을 더하지 않고 현실을 그대로 비춰주는 마음의 상태를 말한다. 마치 맑은 거울이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과 같다. 유명한 화엄경에서는 해인삼매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이는 평온한 마음 속에서 우주의 모든 진리가 보이게 되는 깊은 명상 상태다. 마치 고요한 밤바다에 수많은 별이 떠오르는 것처럼 말이다.

20세기 초 한국에서 강일순이 세운 증산도 전통에서도 이 개념을 받아들여 우주적 갱신에 대한 더 넓은 비전 안에 담았다. 여기서 해인은 인간 의식이 제대로 기를 때 우주의 완전한 질서를 비춰낼 수 있다는 생각과 연결된다. 이 전통에서는 우리가 '후천 문명'을 향해 나아가고 있으며, 이런 맑은 관찰이 더욱 널리 퍼지게 될 것이라고 가르친다.

마지막 시절

일생에 걸쳐 인정상관은 수많은 공사(하늘과 땅의 질서를 바로잡는 신성한 일)를 행했고 신비한 업적과 가르침을 남겼다. 그녀의 비범한 삶은 1955년 음력 12월 23일(단기 4287년)에 막을 내렸다.

본주(인정상관)의 가르침

어느 날 본주가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하늘의 공덕은 삼십이요, 땅의 공덕은 육십이니라." 그리고 이어서 "땅이 하는 말을 알아듣고 하늘이 하는 말을 알아듣는 사람이 이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사람이다."라고 덧붙였다. (2권 76쪽)

'생명의 샘' 기적

본주는 배나무 과수원에 있는 샘물을 가리키며 제자들에게 "'생명수를 수리해라."고 지시했다.

제자들 중 몇몇이 물을 길어다 쓰며 샘을 더 깊이 파고 있을 때, 본주는 "이 일이 끝나면 신기한 일이 많이 나온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만 중생의 생명을 살리는 게 물이다."이라고 강조했다.

본주가 1954년 12월 23일 세상을 떠난 뒤, 금산리 지역의 모든 우물이 말랐다. 그런데 단 하나의 샘만은 물이 가득 차 있었다. 바로 인정상관의 집 앞 배나무 과수원에 있던 그 샘이었다. 이 샘은 사흘 동안이나 물이 솟아났다. 주변 마을 사람들이 모두 그곳에 와서 물을 길어다가 목숨을 이어갈 수 있었다. 바로 인정상관이 보전하라고 했던 그 '생명의 샘'이었던 것이다. 이 일로 마을 사람들은 그의 덕망에 고개를 숙여 예를 표했다고 한다. (2권 74쪽)

맹목적인 종교 신앙에 대한 경고

9월 3일, 본주는 거울 앞에 앉아서 거울에 비친 제자들을 바라보며 이렇게 말했다.

"내가 병신인 줄 아나? 너희가 나를 믿었제?"

여기서 '믿는다'는 것은 종교적인 믿음을 뜻한다. 인정상관은 종교 지도자나 영적 스승이라고 자처하는 사람들을 진짜로 여기지 않았다. 그런 자들을 바보라고 불렀다. 이 말로써 자신은 그런 부류의 사람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했고, 제자들이 자신을 교주로 생각하지 말라고 당부한 것이다. (2권 56쪽)

전주 경찰관들과의 대화

전주경찰서에서 경찰관 세 명이 찾아와 "어떻게 살아야 좋은 삶을 살 수 있겠습니까?"라고 물었다.

본주는 "땅벌이를 해."라고 답했다.

한 경찰관이 "저희는 농사일을 해본 적이 없습니다. 그럼 장사라도 해볼까요?"라고 묻자, 본주는 "장사도 땅벌이 장사 해야 해."고 말했다.

경찰관들이 찾아온 건 아마도 자신들의 직업에 회의를 느꼈기 때문인 듯하다. 본주는 가장 정직한 삶의 방법은 직접 농사를 짓거나 농산물을 가지고 장사하는 것이라고 가르쳤다.

땅에 대한 공경

보통의 성인들이 주로 하늘을 받들었던 것과 달리, 인정상관은 땅을 먼저 공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땅-하늘'이라고 표현하며 땅이 하늘보다 더 무서운 존재라고 가르쳤다. 모든 생명이 땅에 의존해서 살아가니 하늘보다도 더 소중하다고 여긴 것이다.

그래서 땅을 함부로 대하는 사람이 있으면 몹시 꾸짖곤 했다. 예를 들어 누군가 뜨거운 다리미나 무거운 물건을 땅에 내려놓기라도 하면 화를 내며 "땅님이 놀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2권 33쪽)

비단 천 사건

제자 정치일이 경상도에서 찾아왔는데, 다른 제자 박차성이 보낸 고급 비단천(명주베)을 예물로 가져왔다.

본주는 이를 받지 않으며 "불평이 없겠는가?"고 물었다.

치일이 대답하기도 전에 본주는 다시 "불평이 없겠는가?"고 되물으며 그 천을 치일에게 돌려보냈다. 가져온 사람한테 다시 돌려보내라는 뜻이었다. 치일은 어쩔 수 없이 가져갔지만 박차성에게 돌려줄 수는 없어서, 용화동에 사는 친구에게 맡겨두었다.

몇 달이 지나자 정말로 박차성의 집에서 문제가 생겼다. 시어머니의 허락 없이 천을 가져다 보낸 것이 발각된 것이다. 박차성이 용서를 빌었지만 시어머니는 그 천을 다시 가져오라고 고집했다. 다행히 치일의 친구가 그 천을 잘 보관해두고 있어서 더 큰 일은 피할 수 있었다. (2권 24쪽)

제사 음식의 신비

인정상관은 때때로 신령들에게 제사를 지냈는데, 제물이 늘 달랐다. 어떤 때는 밀국수를, 어떤 때는 깨죽을, 또 어떤 때는 찐 감자나 고구마를 올렸다. 제사상에 올리는 음식 가짓수도 세 가지에서 열여덟 가지까지 다양했다. 감자나 과일을 올릴 때는 큰 그릇 하나에 담아서 차렸다.

제사를 지낸 뒤에도 가끔은 며칠 동안 제사상에서 음식을 내리지 않았다. 당연히 음식은 상하기 시작했고, 파란 곰팡이나 빨간 곰팡이가 피어나 보기에 좋지 않았다.

그런데도 제자들이 그 음식을 먹어보면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첫 입은 이상한 맛이 나고 냄새도 좋지 않았지만, 두 번째 입부터는 전혀 문제가 없었다. 다 먹고 나면 시원한 트림이 나오고 입 안에는 은은한 향기가 남았다. 제자들은 본주가 그 음식에 특별한 기운을 넣어놓았기 때문에 기꺼이 먹을 수 있었다고 여겼다. (정연종의 증언, 2권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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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이≫ 발췌

인정상관은 자신의 제자들이 다른 종교에서 하는 것처럼 주문이나 특이한 방법을 통해 수행하는 것을 반대했다. 그는 오로지 정성스러운 영적 수행만을 권했다. 이러한 지시에 따라 임제관이 인정상관의 가르침을 연구했고, 몇 명의 보조와 함께 금산사 근처 누릉골에서 비밀리에 영적 수련을 실행했다. 다음 날 인정상관은 가까운 제자들에게 "아무개가 지금 '마음 바루는 의원공부'를 통해 마음을 바로잡고 있다"라고 말하며 음식과 과일을 보내주었다. 이는 계사년 12월 3일에 일어난 일이었다.

그때부터 인정상관의 제자들은 이 수행을 '마음 바루는 의원공부'라고 불렀다. 당시 이 수행에 참여한 사람들은 대부분 오랜 병을 앓고 있는 상태였다. 21일간의 수행을 마친 후, 그들의 오래된 병이 완전히 나았다. 그중에는 경산의 조용진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휜 척추가 기적적으로 곧아졌다.

그러나 정읍의 최동환은 어려서부터 골수염을 앓아 한쪽 다리를 쓸 수 없었다. 수행을 마친 후에도 아무런 효과가 나타나지 않았다. 함께 수행한 동료들이 위로의 말을 건넸다: "다리는 수행만으로는 낫지 않겠지만, 계속해서 인정상관을 성실히 따르면 나아질 것입니다."

이 조언을 따라 최동환은 집에서 '마음 바루는 의원공부'를 계속했다. 3일 후, 병든 다리의 발등이 아픔 없이 부어올랐다. 무의식중에 집 뒤 대나무 숲으로 들어가 가는 대나무 가지를 꺾어 끝을 뾰족하게 다듬은 후 부어오른 곳을 찔렀다. 그릇 한 개 분량의 고름이 나왔지만 아픔을 느끼지 않았고, 나중에 상처도 완전히 나았다. 그때부터 최동환은 골수염에서 회복되어 수십 년간 완전히 건강한 사람으로 살았다(최근 노년에 병이 재발하여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대화편

다음 대화는 인정상관의 서거와 그가 가르친 덕목에 관한 이야기이다. 저자와 한광수, 임상화, 김영곤, 유세영 간의 대화이다.

저자: 인정상관께서 돌아가실 때의 일을 알고 싶습니다.

한광수: 갑오년 가을, 돌아가시기 몇 달 전에 여러 제자를 불러 서재 뒤편에 선을 그어 높이를 정해주시며 그에 맞춰 시멘트 단을 만들라고 하셨습니다. 저희가 그 지시대로 정확히 만들었죠. 그해 음력 마지막 달에 돌아가셨을 때, 그곳에 임시 관(가빈)을 준비했는데 선생님 지시와 정확히 일치했습니다.

저자: 영적 스승들이 죽을 때 가끔 하는 좌탈(坐脫, 앉아서 초월하는 것)을 경험하셨습니까?

한광수: 아닙니다. 평범한 사람처럼 누워서 돌아가셨습니다.

저자: 돌아가실 때 무슨 말씀을 하셨습니까?

한광수: 김순덕이라는 여인이 선생님 손을 잡고 울 때, "울지 마라. 내가 돌아올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저자: 시신을 가빈에 103일간 보관했는데, 액체가 새거나 불쾌한 냄새가 났습니까?

한광수: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바닥에 기름천을 깔았지만, 한 방울의 액체도 새지 않았고 오히려 좋은 향기가 방 안에 가득했습니다.

저자: 그때 제자들은 어떤 기분이었습니까?

임상화: 선생님께서 분명히 놀라운 일을 하실 거라고 믿었지만, 여전히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저자: 먼 곳에 있던 제자들도 장례 행렬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고 하는데 사실입니까?

한광수: 저희도 여전히 그것이 놀랍다고 생각합니다.

저자: 수만 명의 제자가 있었다고 하는데, 왜 탄생절에는 그렇게 적은 수만 참석합니까?

김영곤: 영적 능력을 개발한 많은 제자들이 각자 다양한 종교를 세우고 떠났고, 여기엔 능력이 부족한 노인들만 남았습니다.

저자: 그런 종파가 몇 개나 됩니까?

유세영: 50개가 넘습니다.

저자: 그들은 일반적으로 누구를 섬깁니까?

임상화: 일부는 여전히 인정상관을 존경하지만, 대부분은 다른 종류의 영들을 숭배합니다.

저자: 제가 아는 바로는 인정상관은 생전에 조직화된 종교에 관심이 없으셨다고 하는데요.

임상화: 맞습니다. 저희가 "우리 종교를 뭐라고 불러야 합니까?"라고 물었을 때, "무슨 종교? '교징교'라고나 할까? 사람들은 항상 다른 사람들이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하게 하려고 한다. 도덕이 아니면 살아남을 수 없다"고 답하셨습니다.

저자: '마음 바루는 의원공부'가 무엇을 의미합니까?

임상화: 선생님께서 "각자가 마음을 바로잡으면 천지가 조화를 이루고, 세상이 바로잡히며, 모든 사람이 평화롭게 살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인류의 큰 병을 치유하고 세상의 큰 위기를 해결하려면 먼저 인류의 마음이 바로잡혀야 합니다. 이 수행은 천, 지, 대도의 원리에 부합하는 깊고 넓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저자: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합니까?

  • 마음을 바로잡고 몸을 정렬한다.
  • 마음과 몸을 편안하게 하고, 마음의 평화를 유지하며, 신앙을 강화한다.
  • 앉거나 걸을 때 등을 곧게 펴고 하복부는 자연스럽게 한다.
  • 부드럽고 길게 숨쉬며, 에너지를 하복부(단전)로 향하게 한다.
  • 마음을 하복부에 집중한다. 이렇게 하면 '천의 마음'이 내려오고 '지의 성실함'이 올라와서 천지의 조화로운 흐름을 이룬다.

저자: 금기사항이 있습니까?

임상화: 평상시 수행에는 없습니다. 하지만 정식으로 정해진 수행 시간에는 오기(五忌)가 있습니다:

  1. 불신
  2. 기운의 분산 (泄氣)
  3. 집착
  4. 과도한 기쁨
  5. 성급함

이 다섯 가지는 심각한 해를 끼치고 길에서 벗어나게 하므로 주의해야 합니다.

저자: 인정상관을 역사상의 어떤 인물과 비교할 수 있습니까?

임상화: "바다를 본 자에게는 강물 이야기가 무의미하다"(觀於海者 難爲水)는 말이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성인의 위대함을 본 사람은 단순한 말로는 감동받을 수 없습니다. 그분은 비교할 수 없는 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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