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화 — 마이산 탑사 이갑룡 도사의 영적 에너지 시각화 (2021)
신성화란 무엇인가?
신성화는 자발적이고 흐르는 움직임을 통해 그림이 나타나는 독특한 형태의 영적 예술입니다. 예술가들은 대상의 에너지에 접근하여 기(氣)가 손을 이끌도록 하며, 보편적 언어 역할을 하는 기하학적 패턴을 창조합니다.
신성화에 대한 해설: 이갑룡 처사
석정 이갑룡 처사의 몸에 드러난 에너지 센터에는 빛의 상징이 나타나 있었다. 그 영적 중심에는 여러 겹의 빛의 상징이 크게 드러났으며, 머리에서 영적 중심으로 이어지는 중심선 또한 여러 층과 마디로 이루어져 있었다. 이는 그가 세운 마이산 탑사가 단순한 돌무더기가 아니라는 강력한 상징이 된다.
그의 몸을 중심으로 펼쳐진 에너지의 층들은 단단하고 견고하게 느껴졌다. 영적 중심의 빛의 상징 위로도 그의 에너지는 계속해서 상승하고 있었다. 발 아래의 물질적 영역과 머리 위의 영적 영역 모두에서 방대한 에너지 정보가 나타났기에, 그 기록에는 추가적인 종이 공간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 추가된 공간들에는 공통적으로 ‘은비학적 상징’이라 할 수 있는 마름모 형태의 에너지체가 새겨져 있었다.
따라서 그는 일반인들이 쉽게 알 수 없는 숨겨진 영적 비밀을 지니고 있었으며, 그것이 돌탑과 비밀스러운 기록을 통해 세상에 작용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마이산 탑사의 문을 들어서는 순간, 마치 다른 세상으로 발을 옮긴 듯한 기분이 든다. 공기마저 달라지는 듯 묘한 정적이 감돌고,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이름 모를 인내로 쌓아 올린 돌탑들이다. 돌이란 그저 돌일 뿐이지만, 하나하나 모아 올려 하늘을 향해 세운 순간, 그것은 더 이상 돌덩이의 무리가 아니다. 그것은 질서와 헌신, 그리고 포기하지 않는 집념이 빚어낸 탑이 된다.

옛날에는 이곳에 120개가 넘는 탑이 즐비했다고 한다. 지금은 약 80여 개만 남아 있다. 세월과 풍화가 깎아낸 탓이기도 하지만, 무심한 방문객들의 손길이 남긴 상처도 적지 않다. 그래서인지 남아 있는 돌탑을 올려다볼 때마다, 사라진 것들의 흔적이 허공에 배어 있는 듯 씁쓸함이 스친다. 탑들은 단순히 아무렇게나 놓인 것이 아니라, 음양(陰陽) 사상과 팔괘(八卦)의 원리에 따라 배치되었다 한다. 예전, 120개의 탑이 모두 우뚝 서 있던 그때, 이곳에 서 있던 이들이 느꼈을 기운은 지금보다 훨씬 넓고 깊었을 것이다.
이 모든 일을 시작한 이는 이갑룡, 법명 석정(石正)이라 불린 인물이다. 사람들은 그가 홀로 돌을 날랐다고 전한다. 그러나 진실은 혼자의 힘만으로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큰 탑에는 한눈에도 먼 곳, 한국의 성산(聖山)에서 가져온 돌들이 자리하고 있어서다. 전설에 따르면 그는 전국의 성지를 오가며 기이한 힘으로 길을 걸었고, 때로는 호랑이를 마치 개처럼 데리고 다녔다고 한다. 이를 증명할 문서는 남아 있지 않지만, 그를 직접 보았다는 마을 사람들의 증언이 오늘날까지 살아남아 이야기를 이어 주고 있다.

석정은 1860년 전남에서 태어났다. 스물다섯 되던 해, 꿈에서 산신령이 자신을 부르는 것을 보고 마이산으로 왔다 한다. 그날 이후, 그는 오직 수행의 길을 걸었다. 특정한 종교에만 매인 것이 아니라 유학(儒學), 불교(佛敎), 도교(道敎)가 버무려진 삶의 법도를 따랐다. 추측하건데, 아마도 풍류도(風流道)에 맞닿은 삶이 아니었을까. 석정은 30년에 걸쳐 돌탑을 쌓아 올렸고, 탑마다 모든 중생이 구원을 얻길 바라는 기도가 깃들어 있었다.

그가 남긴 것은 돌탑만이 아니었다. 일생 동안 30여 권의 책을 썼다고 전해진다. 그 책들은 번뜩이는 환시와 신비한 체험의 순간마다 탄생했다고 한다. 놀라운 것은, 그것이 한문이나 한글이 아니라 전혀 새로운 문자였다는 점이다. 오직 그만이 아는 언어였고, 그 글 속에는 평범한 사람이 다다를 수 없는 세계가 담겨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대부분 사라졌고, 현재는 그의 집안이 보관한 단 두 권만이 남아 있다.

석정은 언젠가 이런 말을 남겼다 한다. “언젠가 진정한 영적 깊이에 이른 사람이 나타나면, 그가 이 책들을 이해할 것이다. 그리고 그 순간, 세상을 이끌 길도 함께 밝혀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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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화의 전반적인 구조를 알고싶다면 이 글을 읽어보세요. 인체의 각 부위에 따른 상징적 의미와, 자주 등장하는 영적 에너지의 상징들을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을 볼 수 있습니다. 2412_704c65-52> |
마이산 탑사, 이갑룡 처사의 이야기
말의 두 귀처럼 솟은 산을 찾으면, 사람은 으레 전설을 기대하게 된다. 마이산(馬耳山) 비탈에 서 있는 돌탑 무리는, 한 사람의 인내가 남긴 고요한 표지들이다.
이갑룡(李甲用, Lee Gap-ryong)은 1860년에 양반가에서 태어났고, 조선 왕조의 효령대군(孝寧大君, Grand Prince Hyoryeong)의 후손이었다고 전해진다. 스물다섯이던 1885년, 조선 말 격변의 기색 속에서 그는 마이산으로 물러나 고요를 택했다.
그는 벽돌도 회반죽도 쓰지 않았다. 맨돌을 주워 모으고, 때로는 고개와 물길을 건너 돌을 날랐다. 그렇게 서른 해 넘는 세월 동안, 손으로 쌓은 탑이 약 120기, 모두 시멘트 없이 무게와 인내, 그리고 믿음으로만 버티게 했다.
돌, 숨, 균형
탑들은 푸른 산자락을 배경으로 조각처럼 솟아 있다. 형태는 단출하다. 넓은 밑돌에서 시작해 둥글게 돌을 돌려 올리고, 마침에 하늘과 땅을 잇는 듯한 편평한 덮개돌이 얹힌다. 큰돌 사이엔 자갈을 촘촘히 메워 바람과 비에 흔들리지 않게 했다. 어떤 탑은 아홉 미터에 이를 만큼 크고, 어떤 탑은 산비탈에 몇 장 돌이 기대듯 서 있다.
누가 요즘 그 많은 해를 한 가지 일에 바칠까. 그러나 그의 인내는 장인의 솜씨를 넘어 수행이 되었고, 조용히 희망을 올리는 기도가 되었다.
절의 뿌리
세월이 흐르며 이갑룡은 출가해 승려가 되었고, 사적인 도량은 기도의 터가 되었다. 사람들은 탑들에 이름을 붙였다. 천지탑, 일광탑(陽光塔, Sunlight Pagoda), 월광탑(月光塔, Moonlight Pagoda), 약사탑(藥師塔, Medicine Buddha Pagoda)처럼, 저마다 사연과 소망, 축원을 품었다.
이후 도량은 정식 사찰의 틀을 갖추었고, 종각과 전각들이 소박하게 들어섰다. 화려함보다 고요가 먼저 오는 절, 탑사는 지금도 그런 품을 지키고 있다.
돌에 깃든 이야기
그는 왜 탑을 쌓았을까. 격동의 시대가 남긴 상처와 혼란, 그 속에서 그는 낮에는 돌을 들고 밤에는 기도하며, 한 돌 한 돌 세상 고통을 덜어보려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또 어떤 이들은 ‘108’에서 뜻을 찾는다. 불교에서 108은 인간의 번뇌와 욕망을 상징한다. 어쩌면 그는 탑 한 기를 올릴 때마다 번뇌 하나를 내려놓았을지 모른다.
탑 하나를 가까이서 보면, 작은 돌이 큰 돌의 숨구멍 사이로 포개지고, 각 돌은 서로에게 기댄다. 이는 믿음의 동작이다. 돌이 돌을 믿고, 그 믿음이 한 몸처럼 서 있는 셈이다. 아이가 기대어 보면 서늘한 무게가 전해질 것이다.
세상이 흔들릴 때도 누군가의 손길이 세상을 단단히 붙들어주려 했다는 마음이 전해진다. 이 탑들은 자랑하지 않는다. 그저 선다. 바람에 살아 있고, 세월에 말이 적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