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화 — 루르드의 성녀 베르나데트의 영적 에너지 시각화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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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신성화 이미지는 2020년에 'Tistory Blog'에 포스팅되었으며 자료 통합과 정리를 위해 업로드합니다.'

신성화에 대한 해설: 성녀 루르드의 베르나데트(마리-베르나르드 수비루)

그녀의 영적 중심에는 뒤집힌 칠각형이 나타났다.

숫자 7은 오래전부터 문턱과 같은 의미를 지녀왔다. 눈에 보이는 물질의 세계에서 한 발자국 나아가 보이지 않는 영혼의 영역으로 들어서는 경계였다. 다른 숫자와 달리 일곱은 곱셈이나 나눗셈의 질서 속에 쉽게 녹아들지 않는다. 흠 없이 떨어지지도 않고, 하나부터 열까지 이어지는 단순한 순서 속에서 새로운 생명을 낳지도 않는다. 그래서 누군가는 이 숫자를 ‘순결한 수’라 불렀다. 손대지 않은 채, 온전하고, 꺾이지 않는 수로 여겼던 것이다.

일곱에서 태어난 칠각형도 그 성질을 물려받았다. 수비학에서 칠각형은 연결과 단절, 두 가지 의미를 동시에 품고 있다. 묘하게 균형 잡힌 셈법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일곱까지 곱한 수와, 일곱 이후 열까지 곱한 수가 서로 같다. 또 하나부터 여섯까지 곱한 값과, 여덟부터 열까지 곱한 값이 같다. 이런 기묘한 일치가 일곱을 어딘가 경계에 서게 한다. 이어주기도 하고 끊어내기도 하면서, 다리이자 벽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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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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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절

우리가 잘 아는 도형들과 달리, 칠각형은 고대에서 ‘모든 도형의 어머니’라 불렸던 물고기 방형(vesica piscis)의 품에서 태어나지 않는다. 원과 다각형을 낳아온 그 자궁 속에서 불려낼 수 없는 도형이라는 점에서, 칠각형은 늘 고집스럽고, 잡히지 않는 신비로 남는다.

그러다 마리-베르나르드 수비루(Marie-Bernarde Soubirous)의 ‘신성화’ 속 영적 중심(spiritual core)에 뒤집힌 칠각형이 모습을 드러냈다. 거기에는 이중적인 성격이 깃들어 있었다. 땅 위에 뿌리를 내리면서도, 영혼의 삶에서 이어짐과 단절을 동시에 가리키는 모양이었다. 그것은 순결을 향한 갈망이기도 했고, 온전함으로 향하려는 애씀의 빛이기도 했다. 버티는 힘과 놓아버림 사이의 미묘한 균형을 찾아내려는 흔적 같았다. 그렇게 칠각형은 단순한 도형을 넘어서, 영혼이 물질을 가로질러 스스로를 짜내는 방식의 상징이 되었다. 어떤 순간에는 이어지고, 또 어떤 순간에는 떨어져 나가더라도, 결국 꺾이지 않은 채 흐르는 길로 남는 것이다.

두 번째 '신성화'를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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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형상 둘레에 사각형이 모든 것을 에워싸고 있다.

사각형은 흔히 물질화, 즉 사물이 구체적인 형태를 갖는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물질계는 정신계보다 무겁기 때문에, 사각형은 때로 구속이나 가능성의 제약으로 읽히기도 한다. 그러나 사각형이 땅에 닿아 있을 때는 견고한 물질의 기반, 우리가 아무런 생각 없이 딛고 서는 토대를 의미한다.

그녀의 '신성화'에서 사각형이 전체 이미지를 둘러싸고 있다는 사실은 우연이라기보다는 정해진 계획의 일부처럼 보인다. 이는 성녀 베르나데트가 동굴에서 만난 성모 발현에 관한 이야기를 떠올리게 한다. "이 세상에서는 행복을 약속할 수 없지만, 다음 세상에서는 행복을 찾을 것이다"라고 그 형상이 그녀에게 말했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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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한 고객이 프랑스 루르드에서 가져온 작은 성수 병을 건네주었다. 멀고 먼 프랑스에서 정성스럽게 가져온 선물이었다. 소박하고 조용한 모습이지만 마음 깊숙이 울림을 주는 뜻밖의 선물이었다. 그 한 번의 진심 어린 마음이 성녀 베르나데트의 '신성화' 초상화를 그리게 된 출발점이 되었다.

평범한 시작

1844년, 프랑스 피레네 산맥 자락의 작은 마을에서 마리-베르나르드 수비루가 태어났다. 훗날 ‘베르나데트’로 불리게 될 소녀다. 가족은 낡은 방앗간의 축축하고 쌀쌀한 방 한 칸에 모여 살았다. 벽은 마를 줄을 몰랐고, 바람은 틈으로 스며들었다. 밥상엔 대개 빵과 수프뿐이었다.

아홉 남매의 맏이였고, 아버지는 방앗간 일을 이어가려 안간힘을 썼지만 결국 일이 기울었다. 어머니는 빨래를 해 겨우 몇 닢을 벌었다. 배고픔은 늘 곁에 있었고, 천식과 잦은 병치레로 기력이 약했던 베르나데트는 여린 아이로 자랐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그 아이를 쾌활하게 기억했다. 공부가 빠른 편은 아니었지만, 다정하고 너그러웠다. 힘겨운 살림살이 속에서도 툭툭 불평을 늘어놓는 법이 드물었다.

그로토

1858년, 베르나데트가 열네 살 되었을 때, 모든 것이 바뀌었다. 어느 차가운 2월, 동생과 친구와 함께 마사비엘이라는 바위굴, 그로토 근처로 땔감을 주우러 갔다. 둘은 성큼성큼 앞서 갔고, 숨이 가쁜 베르나데트는 뒤로 처졌다. 그때, 그녀는 ‘무언가’를 보았다.

그녀는 그것을 “작고 젊은 아가씨”라고 묘사했다. 흰옷을 입고 푸른 띠를 두른, 발치에는 노란 장미가 놓인 듯한 모습. 베르나데트에게 그 형상은 꿈이 아니었다. 너무도 선명한 현실이었다.

그 후 다섯 달 동안, 그녀는 모두 열여덟 번 그로토로 돌아갔다. 어느 날, 그 아가씨가 샘물을 마시라고 했다. 처음엔 진흙뿐이었지만, 맨손으로 파헤치자 맑은 물이 솟기 시작했다. 그 물은 그때부터 지금까지 마른 적이 없다.

마을은 둘로 갈라졌다. 믿는 이도 있었고, 비웃는 이도 있었다. 관리는 그녀를 거짓말쟁이라 몰았고, 성직자들은 이야기를 따져 물었다. 가족들마저 조롱이 두려워 입을 다물라고 했지만, 베르나데트는 흔들리지 않았다. 매번 같은 이야기를, 꾸밈없이, 달라지지 않는 말로 반복했다.

마침내, 그 아가씨가 이름을 밝혔다. “나는 ‘원죄 없이 잉태되신 이’다.” 베르나데트는 그 뜻조차 몰랐다. 글 읽기도 서툰 이 아이가 꾸며낼 만한 말이 아니었다. 당시 교회는 이 교리를 얼마 전 공식적으로 선포한 터였다. 이 한마디가 세상을 놀라게 했다.

갈라진 마을

그로토엔 군중이 몰려들었다. 어떤 이는 샘물에서 치유를 기대했고, 어떤 이는 호기심에 이끌렸다. 당국은 그곳을 막으려 했다. 의사들은 베르나데트에게 병이나 망상이 있는지 살폈다.

거짓으로 증명되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모두가 믿은 것도 아니었다. 많은 이들에게 그녀는 평범하면서도 비범한 소녀로 남았다. 허약한 방앗간집 딸, 그러나 성모를 보았다고 말하는 아이.

새로운 삶

베르나데트의 이름은 빠르게 퍼졌지만, 정작 그녀는 빛을 피했다. 스물두 살에 네베르의 수도원에 들어갔다. 그곳에서 조용히 살며 병동 일을 도왔다. 특별대우는 없었다. 오히려 그녀가 불러온 관심을 못마땅해하는 눈길도 있었다. 베르나데트는 그 관심을 가볍게 밀어냈다. “성모님이 나를 고르신 건 내가 가장 무식했기 때문”이라며.

건강은 더 기울었다. 결핵은 극심한 통증을 남겼지만, 그녀는 묵묵히 견뎠다. 동정받는 것을 싫어했고, 자신에게는 기적을 청하지 않았다.

1879년 4월 16일, 서른다섯의 나이로 생을 마쳤다. 마지막 말은 “거룩하신 마리아, 하느님의 어머니, 죄인인 저를 위해 빌어주소서”였다.

죽음 이후

세월이 흘러 시성 절차 속에 유해를 이장했을 때, 그녀의 몸은 놀랍도록 온전한 모습으로 발견되었다. 무덤 환경의 영향도 있었을 것이다. 지금 그녀의 유해는 네베르의 유리관 속에 안치되어, 사람들은 여전히 그 앞에 선다.

1933년, 그녀는 성 베르나데트로 시성되었다. 그즈음 루르드는 이미 세계에서 손꼽히는 순례지로 자리 잡고 있었다.

의문과 질문

환시와 신앙의 이야기에는 늘 질문이 따라붙는다. 회의적인 시선은 말한다. 어려운 시절엔 대개 집단적 환시가 일어나기 쉽고, 사람들은 희망의 이야기—치유의 샘 같은—에 마음이 쏠린다고. 루르드의 1850년대는 가난했고 지쳐 있었다. 그런 이야기가 어찌 매혹적이지 않겠는가.

또 누군가는 말한다. 베르나데트의 연약한 건강이 환시를 부른 것일지도 모른다고. 병과 스트레스는 환각을 낳을 수 있다. 루르드에서 수천 건의 치유가 보고되었지만, 과학적으로 ‘설명 불가’ 판정을 받은 사례는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분명한 사실이 하나 있다. 외딴 마을의 병약한 소녀가 그곳을 영영 바꾸어놓았다는 것. 루르드는 이제 전 세계에 알려진 이름이 되었고, 그 중심에는 늘 베르나데트가 서 있다.

인간 베르나데트

그녀의 이야기를 오래 살게 하는 것은 환시만이 아니다. 인간 베르나데트의 결이 있다. 흠 없는 성녀로 칭송받던 사람이 아니었다. 가난했고, 배움이 짧았고, 병치레가 잦았고, 고집이 셀 때도 있었다. 배고픔과 무력감, ‘느리다’는 손가락질의 쓰라림을 알았다.

그럼에도 그녀는 자신의 말을 고요히 붙들었다. 아마 그것이 그녀를 잊히지 않게 만든다. 환시를 믿든 믿지 않든, 그 끈기가 남긴 울림은 분명하다.

오늘의 루르드에는 묵주 가게들이 이어지고, 순례자들은 그로토 앞에 무릎을 꿇는다. 차가운 바위를 쓰다듬고, 샘물을 마신다. 누군가는 치유를 바라며, 누군가는 그저 성스러운 것에 가까이 서고 싶어 한다.

그 한가운데, 늘 베르나데트가 있다. 나막신을 신은 소녀, 천식 기침을 훌쩍이며 강가에서 나뭇가지를 줍던 소녀, 흰옷 입은 아가씨를 보았다고 말하던 그 아이.

그녀의 삶은 일상의 이야기 '가난과 고단함으로 얼룩진' 속에서도, 문득 비범한 경이가 스며들 수 있음을 일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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