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화 — 봉쇄수도원 카르투시오 설립자 성 브루노의 영적 에너지 시각화 (2023)
신성화란 무엇인가?
신성화는 자발적이고 흐르는 움직임을 통해 그림이 나타나는 독특한 형태의 영적 예술입니다. 예술가들은 대상의 에너지에 접근하여 기(氣)가 손을 이끌도록 하며, 보편적 언어 역할을 하는 기하학적 패턴을 창조합니다.
신성화에 대한 해설: 성 브루노
약 석 달 전, 나는 〈봉쇄수도원 카르투시오〉라는 영화를 접하게 되었다. 원래는 수도회를 설립한 성 브루노 사제의 신성화를 그릴 계획은 없었다. 그러나 그들의 절제되고 엄격한 삶의 모습에서 영감을 받아, 자연스레 그려보고 싶다는 마음이 일어났다. 그렇게 시작한 작업이 어느새 세 달이 흘렀다.
카르투시오 수도원은 현재 전 세계 12개국에 23곳이 있다. 이 가운데 21곳은 유럽과 미국에 있고, 한국에는 남녀 수도원이 각각 한 곳씩 있다. 아시아에서는 한국이 유일하다. 카르투시오회는 세상의 소리를 떠나 하느님의 음성에만 귀 기울이며 은수자로 살아가는 곳이다. 그곳의 생활은 죽어서도 끝나지 않는 철저한 고립과 외부와의 최소한의 접촉으로 이루어지며, 바로 이 점이 영화에 독특한 매력을 부여한다.
이것은 성 브루노 사제의 신성화다.
그의 머리에는 빛의 상징이 드러나 있고, 가슴에는 점선 형태의 빛이, 명치에는 영적인 빛의 기호가 나타나 있다. 특히 손에서 여러 갈래로 뻗어 나오는 에너지 줄기가 인상적이다. 이는 부정과 불의를 바로잡는 그의 능력을 표현하는 듯하다. 손은 재능과 힘을 상징하며, 그 에너지 방출은 하느님의 뜻을 실현하려는 의지를 드러낸다.
작업을 이어가던 중 더 확장되는 에너지가 느껴져, 나는 종이를 이어 붙여 그림을 확장했다.
완성된 그림에서는 오각형 형태의 물질적 빛의 상징이 모든 에너지를 감싸며 드러났다. 그 주위를 둘러싼 에너지장은 성 브루노 사제의 성격을 상징한다. 오각형은 강한 고집과 완고함을 나타내는데, 이는 그가 선택한 고독과 침묵의 은수 생활을 굳건히 이어간 성품을 보여준다. 한 번 결심하면 누구도 꺾을 수 없는 분이었던 것이다.
나는 이런 생각을 해본다. 수도사들의 엄격한 규율과 고립된 삶이 가능한 이유는, 세상의 그 어떤 기쁨보다 더 큰 신비와 충만이 하느님 안에서 주어지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곧 신과의 합일을 향한 갈망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닐까.
무엇보다 어떤 분야에서든 오직 ‘가치 있는 하나’에 집중하는 이들의 삶은 경이롭고, 아름답고, 존경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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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화의 전반적인 구조를 알고싶다면 이 글을 읽어보세요. 인체의 각 부위에 따른 상징적 의미와, 자주 등장하는 영적 에너지의 상징들을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을 볼 수 있습니다. 2412_704c65-52> |
Quote
"세상은 변해도, 십자가는 흔들리지 않는다."
"광야의 고요와 고독을 직접 마주한 이들만이, 그 속에서 누리는 은혜와 하늘의 기쁨을 참되게 알 수 있다."
"사람이 하는 일은, 그가 무엇을 사랑하고 무엇을 알고 있는지를 드러낸다."
"광야의 침묵과 고독 속에서 하느님을 위해 싸우는 이들에게, 주님은 세상이 알지 못하는 평화와 성령 안의 기쁨을 상으로 주신다."
"활도 너무 오래 당기면 결국 느슨해져 제 기능을 잃는다."
"악마는 선한 이를 시험할 수는 있어도, 그 안에 머물지는 못한다. 그들의 기도에, 회개의 눈물에, 자선과 선행에 의해 그는 뒤흔들리고 쫓겨날 뿐이다."
"불결한 영은 사람 안에 쉽게 들어오지만, 쉽게 떠나가기도 한다."
고요한 헌신의 삶
사람들이 '성인'을 떠올릴 때면 보통 기적과 위대한 사건으로 가득 찬 극적인 이야기를 상상하곤 한다. 하지만 성 브루노(약 1030~1101)는 조용하고 사려 깊은 교회인으로서, 카르투지오 수도회를 창립했지만 화려한 이야기는 거의 없다. 그는 떠들썩한 세상 속에서 고요를 찾아 나선 사람이다. 아마 그래서 천 년이 다 되어 가는 지금까지도 그의 유산에서 안정감과 부드러움을 느끼는 이들이 많은 듯하다.
쾰른에서 태어난 소년
브루노는 약 1030년쯤 독일 현재의 쾰른에서 태어났다. 당시 쾰른은 르네상스가 피어나던 무역 도시로, 라인 강을 오가는 상인들과 석조 교회, 그리고 학문을 배우는 학생들로 북적였다. 그는 존경받는 집안에서 태어나 어릴 때부터 배울 기회를 얻었다.
당시 아이들에게 교육은 흔하지 않았는데, 책은 비쌌고 모두 손으로 쓴 필사본이었으며 학교는 주로 성당과 연결되어 있었다. 브루노는 총명했고 배움을 좋아했다. 그는 프랑스의 랭스에서 공부하며 당시 가장 뛰어난 학자 중 한 명으로 명성을 얻었다. 학생들은 그를 존경했고, 선생들은 그의 말을 신뢰했다. 그는 지적인 동시에 차분하고 다정한 성품으로 많은 사람들이 믿을 수 있는 사람이었다.
랭스에서 빛나는 가능성
브루노는 중년에 이르러 랭스 대성당 학교의 교사가 되었는데, 이곳은 당시 유럽에서 가장 중요한 학문 중심지 중 하나였다. 그는 앞으로 주교나 정치가가 될 이들을 가르쳤고, 그들은 그의 가르침을 평생 간직했다.
주변 사람들은 그가 곧 고위 교회의 권력자가 될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그런 삶은 그에게 매력적이지 않았다.
그를 괴롭힌 건 권력의 짐만이 아니라, 당시 교회 지도자들의 부패였다. 11세기 교회는 결코 순수하지 않았다. 주교들은 자리를 사고팔았고, 교회 자리는 신앙이 아닌 정치로 나눠졌다. 브루노는 이 모든 것을 목격하고, 권력을 쫓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야망을 접고 떠나다
한때 브루노는 랭스 대주교 자리를 제안받았다. 당시 대부분의 사람들은 기회를 놓치지 않았겠지만, 그는 거절했다. 그는 이미 마음이 궁정과 회의장이 아닌 고요함에 가 있음을 알았다.
그 결심은 쉽지 않았다. 권력과 명예를 버리는 것은 편안하고 존경받는 삶을 내려놓는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그는 더 이상 다툼을 벌이거나 출세하려 하지 않았다. 그는 기도하고 공부하며 하나님께 귀 기울일 공간을 원했다. 그래서 그는 떠났다.
고요를 찾아서
비슷한 뜻을 품은 몇몇 동료와 함께 브루노는 프랑스 동남부 그르노블에 갔다. 그곳의 주교 휴 드 샤토네프는 그들을 환영했고, 그들을 '샤르트뢰즈'(Chartreuse)라 불리는 산악 골짜기로 안내했다. 그곳은 겨울이면 눈 덮인 숲과 차가운 개울이 흐르는 외딴 곳이었다.
브루노와 동료들은 작은 나무와 돌로 된 오두막을 지었는데, 각기 혼자 지낼 만큼 작았다. 중앙에는 기도드리는 예배당이 있었다. 이것이 카르투지오 수도회의 시작이었다.
다른 수도원들은 식사도 함께 하고 큰 도서관도 있었으며 수도사들이 밭에서 함께 일하기도 했다. 그러나 브루노는 다른 길을 택했다. 그는 혼자 하나님과 함께하는 고요함과 공동체의 삶을 함께 원했다. 혼자 있으면서도 기도할 때는 함께 모이는, 미묘한 균형이었다.
카르투시오의 길
카르투지오 수도사들은 금식과 침묵, 기도의 삶을 살았다. 먹는 것 또한 검소했다. 빵, 채소, 물, 때로는 적은 양의 포도주가 전부였고, 고기는 피했다. 개인 소유물은 없었다. 그들은 대부분의 시간을 각자의 방에서 책을 읽거나 기도하며 보냈지만, 하루에 몇 번씩 함께 모여 예배를 드렸다.
이런 생활패턴은 강한 규율을 요구했지만 동시에 마음의 자유도 주었다. 주의를 산만하게 하는 것이 없는, 명확한 집중의 자유였다. 브루노의 수도회는 다른 수도회처럼 엄격한 문서 규칙으로 정해지지 않았다. 그 대신 간단한 삶의 방식에서 자라나 천천히 발전했다.
지금도 거의 천년이 지난 후에도 카르투지오 수도사들은 여전히 그 고요한 삶을 따른다. 현대의 소음에 비춰 보면 기묘한 삶일지 모르지만, 그들에게 침묵은 텅 빈 것이 아니라 풍요이다.
로마의 부름
브루노의 샤르트뢰즈 생활은 끊임없이 이어지지 못했다. 그가 가르쳤던 제자 중 한 명이었던 교황 어반 2세가 그를 로마로 불렀다. 여러 권력자가 서로 교회를 장악하려 싸우는 혼란한 시기에 조언자가 되어 달라는 요청이었다. 브루노는 쉽게 거절하지 못하고 떠났다.
그가 로마에서 일하는 동안에도 마음은 늘 고요한 산속에 있었다. 그곳의 소음과 번잡함은 그를 눌렀다.
결국 교황의 허락을 받아 남부 이탈리아 칼라브리아로 가 작은 은둔처를 세우고 마지막 삶을 보냈다. 그는 그곳에서 1101년에 숨을 거두었다.
성 브루노에 대한 기록은 다른 성인들에 비해 많지 않다. 유명한 기적도, 방대한 글도 없다. 남은 것은 그를 아는 이들의 증언뿐이다. 조용한 신앙인, 깊이 생각하고 차분하며 엄격하지 않은 진지한 사람이었다.
예술 작품에서는 카르투지오 수도복인 하얀 옷을 입고 죽음의 덧없음을 상기시키는 해골을 들고 있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불타는 열정보다는 내면을 응시하는 모습을 보여 준다.
카르투지오 수도회의 모토는 'Stat crux dum volvitur orbis'다. '세상이 돌고 있어도 십자가는 굳건히 선다'는 뜻으로, 브루노가 남긴 정신을 잘 보여 준다. 세월이 흐르고, 전쟁과 왕국의 흥망, 혁명이 세상을 바꿔도 카르투지오 수도사들은 변함없이 각자 방에서 조용히 기도한다.
이런 선택은 때로 칭송받고 때로 비판받았다. 재능 있는 이들이 세상에 나서지 않고 숨어 산다는 것이 아깝다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침묵 역시 하나의 봉사라고 보는 이들도 있다. 모든 공헌이 눈에 보일 필요는 없다는 되새김이다.
평범하면서도 특별한
브루노를 흔히 비범한 인물로 여긴다. 권력과 명예를 버리고 세상의 주목을 받지 않는 길을 택했기에 그렇다. 하지만 또 다른 시각으로 보면, 그는 그저 자신의 마음에 충실했던 사람일 뿐이다. 야망보다 정직함을, 정치보다 기도를 택했다. 우리 모두도 이런 선택을 한다. 남들이 원하는 것을 계속 좇을지, 아니면 진정 마음이 원하는 길로 돌아서서 걸을지.
그런 점에서 그의 이야기가 오래도록 기억되는지도 모른다. 극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는 소음을 뚫고 조용한 길을 걸었던 한 사람이었다.
성 브루노의 기일은 매년 10월 6일이다. 그가 태어난 쾰른과 숨을 거둔 칼라브리아에서 그의 기억이 이어지고 있다. 전 세계의 카르투지오 수도사들은 그의 길을 따라 걷고 있다.
대부분 사람에게 그의 조용한 삶은 먼 이야기일 것이다. 누구도 일상의 소음 대신 산속 작은 방을 택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가르침은 우리 일상에도 스며들 수 있다. 때로는 고요함이 필요하고, 때로는 소음과 욕망에서 한 걸음 물러서는 것이야말로 강함임을 일깨워 준다.
그의 이야기는 신앙이 반드시 울부짖는 것이 아님을 보여 준다. 가끔은 조용히 속삭이기도 한다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