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화 - 틱광득 스님의 영적 에너지 시각화 (2019)
신성화란 무엇인가?
신성화는 자발적이고 흐르는 움직임을 통해 그림이 나타나는 독특한 형태의 영적 예술입니다. 예술가들은 대상의 에너지에 접근하여 기(氣)가 손을 이끌도록 하며, 보편적 언어 역할을 하는 기하학적 패턴을 창조합니다.
틱광득 스님의 신성화에 대한 간략한 설명
그의 ‘영적 중심’에서 넓게 퍼지는 ‘빛의 상징’이 자연스럽게 펼쳐진다. ‘영적 중심선’과 ‘나선 에너지 상징’이 만나는 자리에서는, 둘러싼 에너지가 발끝을 향해 흘러내리는 움직임이 드러난다. 바로 그 발 아래에는, 세상에 무언가를 구체화시키는 사각형의 에너지 형태가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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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화의 전반적인 구조를 알고싶다면 이 글을 읽어보세요. 인체의 각 부위에 따른 상징적 의미와, 자주 등장하는 영적 에너지의 상징들을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을 볼 수 있습니다. 2412_704c65-52> |
고요한 승려가 역사를 바꾸다
1963년 화요일 아침, 사이공은 늘 그렇듯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오토바이들이 거리를 누비고, 노점상들은 손님들을 부르고, 아이들은 학교로 향한다. 그 중 대통령 궁 근처 한 복잡한 교차로에서 놀라운 일이 벌어진다. 66세의 한 불교 승려가 조용히 방석에 앉아 연꽃 자세를 취한 뒤, 고통도 보이지 않은 채 스스로 몸에 불을 붙인다.
그의 이름은 틱광득, 본명은 람반뚝이다. 그날 6월 아침에 벌어진 그의 행동은 전 세계로 퍼져나가 뉴욕에서 런던까지 수많은 신문 1면을 장식했다. 존 F. 케네디 대통령은 나중에 이렇게 말했다. "역사상 이만큼 전 세계인의 마음을 흔든 뉴스 사진은 없었다."
그렇다면 이 고요한 사람은 누구였고, 무엇이 그를 이런 기이한 행동으로 이끌었을까?
평범한 시작
1897년경 베트남 중부 후이칸이라는 마을에서 태어난 틱광득은 여섯 형제자매 사이에서 자랐다. 그의 어린 시절은 특별할 것 없었다. 그저 평범한 시골 소년이었다. 하지만 어린 나이부터 마음을 끌리는 무언가가 있었다. 일곱 살 때, 그는 집을 떠나 불교 승려였던 외삼촌 밑에서 불교 경전을 배우기 시작했다.
한 번 생각해보라. 일곱 살은 대부분 아이들이 자전거를 배우거나 2학년을 시작하는 나이다. 하지만 뚝은 이미 더 깊은 곳에 이끌렸다. 불교의 조용한 지혜와 수행자의 규율에 말이다.
열다섯 살에 그는 사미(초발)를 했고, 스무 살에는 사미승(정식출가승)으로 완전한 서원을 하며 틱꽝득이라는 이름을 받았다. '틱(Thich)'은 베트남 승려들이 이름 앞에 붙이는 호칭으로, 영어의 ‘Reverend’와 비슷하게 그들의 정신적 계보를 나타낸다. ‘광득’은 ‘넓은 덕’을 뜻한다.
절을 짓고 믿음을 세우다
그렇다면 20세기 초 베트남의 젊은 승려는 무엇을 했을까? 득은 20~30대를 전국을 돌아다니며 보내고, 가끔은 산속에서 은둔하며 수년간 혼자 명상에 잠겼다. 명성이나 인정을 좇는 것이 아니었다. 불교 승려들은 깊은 명상과 연구를 통해 마음을 닦으며 자신을 다잡는다.
하지만 득은 실무적인 면도 있었다. 평생 31개의 사찰 건설을 감독했다. 지역 사회와 협력하고, 기금을 모으며, 건축을 관리하는 인내심이 필요했으리라. 또한 승려 감독관으로 일하며 불교 공동체의 품질 관리를 담당했다. 1934년에는 남부로 옮겨 교육자로 일했고, 캄보디아에서도 2년간 머물렀다.
화려하지는 않았지만 중요한 일들이었다. 득은 조용히 일이 되도록 만들어내는 사람이었다.
신앙과 정치가 만난 자리
상황은 어두워졌다. 1950년대 베트남은 프랑스로부터 독립했으나 북과 남으로 나뉘었다. 남부는 가톨릭 대통령 응오딘지엠이 통치하는데, 인구의 90%가량이 불교였다.
처음에는 큰 문제 같지 않아 보인다. 많은 나라들이 소수 종교자를 지도자로 둔다. 그러나 지엠은 단순히 가톨릭 신자이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는 가톨릭 신자들에게 특혜를 주었다. 더 좋은 일자리, 세금 면제, 종교 행사 때 바티칸 깃발을 자유롭게 내걸 수 있었다. 반면 불교 신자들은 제약과 차별을 겪었다.
결정적 계기는 1963년 5월, 부처님 오신 날인 베삭 축제에서 일어났다. 몇 주 전 지엠은 자신의 형인 가톨릭 대주교의 축하 행사 때 가톨릭 신자들에게 바티칸 깃발을 흔들라고 독려했다. 그러나 불교도들이 후에시에서 부처님 생일 깃발을 내걸려고 하자 경찰이 이를 막았다.
원래 기뻐야 할 종교 축제가 충돌로 변했고, 정부는 군중에게 총격을 가했다. 9명이 숨졌고, 두 어린 아이는 장갑차에 깔렸다. 지엠 정부는 책임을 부인하며 공산주의자들의 선동 탓으로 돌렸다.
세상을 흔든 결정
후에 사건 후, 불교 지도자들은 자신의 목소리를 국제적으로 알리기 위해 극단적 행동이 필요함을 알았다. 1963년 들어서 미국이 지엠 권력을 지원하는 상황에서 변화를 위해서는 미국 대중의 여론을 움직이는 게 관건이었다.
득은 역사의 가장 유명한 항의 행동에 자원했다. 계획은 신중했다. 불교 지도자들은 AP 사진작가 말컴 브라우언 등 미국 언론인들에게 "6월 11일 중요한 일이 있을 것"이라고 알렸다.
그날 아침, 득은 판딘풍과 레반더에트 거리 교차로에서 차에서 내렸다. 다른 승려들은 그의 주변을 보호하듯 동그랗게 둘러쌌다. 그는 연꽃 자세로 앉아 다리는 꼬고, 등을 곧게 펴고, 두 손을 모아 명상하듯 가만히 있었다. 한 승려가 기름을 끼얹고, 또 다른 승려가 성냥을 건넸다.
득은 직접 성냥을 켰다.
목격자들은 영화 같은 장면이라고 전했다. 불꽃이 그를 삼키는 동안 득은 꿈쩍도 하지 않고 소리 내지 않았다. 끝까지 명상 자세를 유지했고, 불에 타는 냄새가 진동했지만 옆에 있던 베트남 사람들은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득은 흔들림 없었다.
죽기 전 쓴 편지에서 그는 이렇게 호소했다. "응오딘지엠 대통령께 간절히 청합니다. 국민에게 자비심을 가지고 종교 평등을 실천해 주시길 바랍니다."
파급효과
브라우언이 찍은 흑백 사진은 전 세계 신문 1면에 등장했다.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베트남이 갑자기 모두의 관심 대상이 되었다. 불타는 노승의 평온한 마지막 순간은 그 누구도 무시할 수 없는 이미지였다.
즉각적 반응이 일어났다. 케네디 대통령은 아침 신문을 보고 "지저스!"이라 탄식했다고 전해진다. 국제사회의 지엠에 대한 압박이 거세졌다. 무엇보다, 이 사진은 지금껏 침묵하던 베트남 불교도와 시민들을 일깨웠다.
이후 몇몇 승려가 득을 따라 자살 항의를 했고, 학생 시위도 남부 전역에서 일어났다. 결국 1963년 11월 지엠 정권이 무너지는 데 불교 위기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
질문과 복잡함
그러나 득의 이야기는 단순하지 않다. 일부 역사가들은 1963년 불교 위기가 단순한 종교 차별을 넘어서 더 복잡한 정치·사회적 갈등이었다고 본다. 불교 지도자들 또한 지엠 정부와 공산주의 북부와 다른 베트남의 미래를 꿈꿨다. 이 위기는 세 세력이 맞붙은 싸움이었다.
또한 자살 항의 행위인 ‘자화상(自焚)’에 대한 윤리적 고민도 있다. 이 행위는 불교 전통에서 대의를 위한 자기 희생으로 자리 잡았지만, 이에 관해 각 불교 공동체마다 다양한 견해가 존재한다.
비판론자들 중 일부는 1963년 불교 지도부가 언론 조작에 능했다며 정치적 계산이 깔렸다고 평가한다. 득의 용기를 깎아내리려는 건 아니지만, 영적 항의조차 정치권 내에서 일어난다는 점을 보여준다.
불꽃을 너머
오늘날 득은 그 한 장의 강렬한 사진으로 주로 기억된다. 그의 모습은 억압에 맞서는 평화적 저항의 보편적 상징이 되었다. 마틴 루터 킹 주니어는 비폭력 저항을 논할 때 그를 언급했다. 득의 희생은 이후 전 세계 인권 운동에 영감을 주었다.
베트남에는 득이 목숨을 바친 그 자리 교차로에 기념비가 서 있다. 방문객들은 꽃과 향을 두고 조용한 추모의 공간으로 여기며 정치적 시위와는 구분한다.
하지만 틱광득을 이해하는 데 가장 중요한 점은 그가 상징이 되려 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는 절을 짓고 제자를 가르치며 공동체를 위해 애쓰던 수행자였다. 불의에 마주했을 때, 그가 아는 가장 직접적인 방법으로—즉 개인의 헌신적인 희생으로 반응한 것이다.
그의 이야기는 역사상 가장 강렬한 순간들이 얼마나 평범한 사람들이 특별한 선택을 할 때 만들어지는지 알려준다. 외치는 시위와 충돌이 흔한 세상에서, 득이 보여준 침묵의 명상과 죽음 앞의 고요한 태도는 전혀 다른 저항의 길을 제시한다. 그것은 외적 힘이 아닌 내면의 힘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일곱 살에 집을 떠나 불교 가르침을 배운 소년은 마지막 순간에 세상에 용기와 신념, 그리고 믿음의 조용한 힘에 대해 가르쳤던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