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토벤의 신성화 (2019): 음악 거장의 영적 에너지

Beethoven Low
'이 신성화 이미지는 2019년에 'Tistory Blog'에 포스팅되었으며 자료 통합과 정리를 위해 업로드합니다.'

베토벤의 신성화에 대한 간략한 설명

베토벤의 신성화를 바라보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황금빛이다. 금색은 다른 색깔과는 다른 무게감을 지닌다. 견고하고 흔들리지 않는 그 무엇이 있다. 이 작품에서 베토벤의 발은 황금빛에 휩싸여 있는데, 발이라는 것은 우리가 걸어가야 할 길, 바로 우리의 소명을 나타내는 것이다. 베토벤에게 그 길은 언제나 음악이었다. 그가 얼마나 확신에 차 있었는지, 그의 목적의식이 얼마나 단단했는지 느껴진다. 그 황금빛으로 휩싸인 발에서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에는 흔들리지 않는 무언가가 있다. 삶이 아무리 어려워져도 꺾이지 않는 그런 의지 말이다.

베토벤의 몸 주변에는 다섯 겹의 에너지장이 펼쳐져 있다. 그 황금빛에서 시작해서 바깥쪽으로 퍼져나간다. 이것을 보면 그가 일상의 세계에서 얼마나 강했는지 알 수 있다. 온갖 시련을 견뎌낼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런 단단한 바탕이 있었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것은 베토벤의 신성화와 모차르트의 신성화를 비교해보는 일이다. 둘 다 하늘이 내린 재능의 소유자였다. 베토벤은 아홉 살부터 대중들 앞에서 공개 연주를 할 정도였다. 하지만 두 사람의 에너지는 전혀 다르게 나타난다. 모차르트의 나선 에너지 상징들은 마치 춤을 추듯 자유롭게 흘러간다면, 베토벤의 나선 에너지들은 수학적으로 정확하게 배열되어 있다. 완벽하게 균형을 이루고 있다. 마치 그들의 성격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다.

베토벤의 머리 위쪽에는 위로 뻗어 올라가는 이중 나선이 있다. 이것은 창조적 힘의 상징이다. 작은 나선들이 여기서 갈라져 나와 그의 영적 영역이라고 느껴지는 곳 전체에 퍼져 있다. 이것을 보면 베토벤이 얼마나 뛰어난 음악적 영감을 받을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는지 알 수 있다. 평범한 생각을 넘어선 어디선가에서 선율이 찾아오는 그런 순간들 말이다. 그 작은 나선 가지들 중 일부는 순수한 선물처럼 느껴지고, 다른 것들은 엄청난 노력의 흔적을 담고 있다. 결국 이 둘의 조합이야말로 베토벤을 베토벤답게 만든 것이다.

Quote

"음악은 어떤 지혜나 철학보다 더 깊은 진리를 보여준다."

 "음을 틀리는 것은 사소한 일이다. 하지만 열정 없이 연주하는 것만은 용납할 수 없다."

"나는 운명을 붙잡고 맞서겠다. 운명이 나를 완전히 굴복시킬 수는 없다."

"음악은 꿈과 같다. 내가 들을 수 없는 꿈처럼."

"왕자는 천 명이 있어도 베토벤은 오직 하나뿐이다."

"맑은 마음을 가진 사람만이 제대로 된 수프를 끓일 수 있다."

"박수를 쳐주게, 친구들아. 이 희극도 이제 막을 내린다."

헝클어진 머리의 천재

헝클어진 머리에 구겨진 옷을 입은 한 남자가 비엔나의 호화로운 살롱으로 거칠게 들어선다. 그는 피아노 앞에 앉아 어른들도 울게 만드는 아름다운 음악을 연주하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갑자기 청중 중 누군가에게 화를 내며 피아노 뚜껑을 쾅 닫고 성큼성큼 나가 버린다. 이것이 바로 루드비히 반 베토벤의 평범한 화요일 풍경이었다.

베토벤이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클래식 음악을 작곡했다는 사실은 누구나 안다. 하지만 그 감동적인 선율 뒤에 숨어 있던 인간 베토벤은 공원의 엄숙한 동상이 보여주는 것보다 훨씬 복잡한 사람이었다. 그의 이야기는 단순히 걸작을 만들어낸 것에 그치지 않는다. 우리처럼 고민하고, 싸우고, 때로는 실수도 했던 한 인간의 이야기다.

힘겨운 시작

루드비히 반 베토벤은 1770년 12월 독일 본에서 태어났다. 정확한 생일은 여전히 수수께끼로 남아 있지만, 그의 가족은 12월 16일을 생일로 기념했다. 어린 루드비히에게 삶은 처음부터 쉽지 않았다. 아버지 요한은 가수였는데, 아들에 대한 큰 꿈을 품고 있었지만 심각한 알코올 문제도 안고 있었다.

요한은 루드비히의 음악적 재능을 일찍 발견하고 자신의 아들을 차세대 모차르트로 만들겠다고 결심했다. 문제는 요한의 교육 방식이 지나치게 가혹했다는 점이다. 그는 어린 루드비히를 한밤중에 깨워 새벽까지 피아노 연습을 강요했다. 레슨이 너무 혹독해서 어린 루드비히는 자주 울음을 터뜨렸다.

이런 험난한 시작에도 불구하고 루드비히의 재능은 숨길 수 없었다. 열한 살에 이미 오르가니스트 보조로 일하기 시작했고, 열두 살에는 가족을 위해 돈을 벌어들였다. 본에서 그의 가장 중요한 스승은 크리스티안 고틀로프 네페였다. 궁정 오르가니스트였던 네페는 루드비히가 겨우 열두 살 때 첫 작품을 출간하도록 도와주었다.

비엔나에서 자신만의 목소리 찾기

열일곱 살 때 루드비히는 유명한 모차르트에게 배우려고 비엔나로 향했다. 하지만 어머니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급히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어머니는 얼마 지나지 않아 세상을 떠났고, 루드비히는 두 남동생을 돌봐야 했다.

5년 후인 1792년, 루드비히는 마침내 비엔나에 완전히 정착했다. 그때는 이미 모차르트가 세상을 떠난 뒤였지만, 루드비히는 또 다른 음악 거장 요제프 하이든에게 배울 수 있었다. 비엔나는 야심찬 젊은 음악가에게 완벽한 곳이었고, 루드비히의 피아노 연주는 예술가들을 후원하는 부유한 귀족들을 매료시켰다.

하지만 루드비히는 다른 작곡가들이 해온 것을 단순히 따라 하는 데 만족하지 않았다. 그의 세 번째 교향곡 '영웅'은 너무나 혁명적이어서 음악사를 영원히 바꿔놓았다. 원래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에게 헌정하려 했던 이 곡은 나폴레옹이 황제로 즉위하자 루드비히가 분노하여 헌정 페이지를 찢어버렸다. 이 일화만 봐도 루드비히의 불같은 성격을 짐작할 수 있다.

소리가 사라져 갈 때

루드비히가 한창 전성기를 맞고 있을 때 재앙이 닥쳤다. 20대 후반부터 청력을 잃기 시작한 것이다. 음악가가 자신의 음악을 들을 수 없게 되는 상황을 상상해 보라. 1819년경 루드비히는 완전히 귀가 들리지 않게 되었다.

절망감은 엄청났다. 1802년 그는 '하일리겐슈타트 유서'라는 편지를 형제들에게 써서 자신의 상태에 대한 깊은 두려움을 쏟아냈다. 우울증이 그를 깊이 사로잡아 자살까지 생각했다. 하지만 대신 그는 이렇게 선언했다. "운명의 목을 잡겠다. 운명이 나를 완전히 굴복시키지는 못할 것이다."

놀랍게도 그의 가장 위대한 작품들 중 일부는 귀가 들리지 않게 된 후에 탄생했다. 유명한 9번 교향곡은 한 음표도 들을 수 없는 상태에서 작곡되었다. 1824년 초연에서 그는 천둥 같은 박수 소리를 들을 수 없어서 누군가가 그를 돌려세워 관객들의 박수를 볼 수 있도록 해야 했다.

말썽꾸러기

베토벤에 대해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 하나 있다. 그는 함께 있기 정말 힘든 사람이었다. 시끄럽고, 무례하고, 지저분하기로 악명이 높았다. 그의 성질은 전설적이어서 후원자들, 동료 음악가들, 그리고 자신과 마주치는 거의 모든 사람과 싸움을 벌였다.

그의 작품 중 많은 곡들이 너무 급진적이어서 비평가들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랐다. 일부는 그의 작품을 "지나치게 야심적" 또는 "불필요하게 복잡하다"고 평가절하했다. 지금은 걸작으로 여겨지는 그의 후기 작품들도 처음에는 익숙한 소리를 원하는 청중들로부터 혼란과 심지어 적대감을 불러일으켰다.

다른 유명한 작곡가들도 그에 대해 엇갈린 감정을 보였다. 쇼팽은 베토벤을 "영원한 원칙을 저버렸다"고 비난했고, 드뷔시는 나중에 그의 피아노 소나타를 "형편없이 쓰여진 곡"이라고 비판했다. 하지만 루드비히는 다른 사람들의 의견 따위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누군가 그에게 음악을 단순하게 만들어달라고 요청했을 때, 그는 "나는 엘리트를 위해 작곡한다"고 유명한 대답을 남겼다.

그가 남긴 것

모든 고난과 까다로운 성격에도 불구하고 루드비히 반 베토벤은 우리에게 놀라운 선물을 남겼다. 그의 아홉 개 교향곡, '월광 소나타' 같은 피아노 소나타들, 그리고 '엘리제를 위하여' 같은 작품들은 지금도 전 세계에서 연주되고 사랑받고 있다. 그는 음악을 미지의 영역으로 밀어넣어 뒤따르는 낭만주의 시대의 길을 열었다.

루드비히가 1827년 3월 26일 비엔나에서 세상을 떠났을 때, 수천 명이 그의 장례식에 참석했다. 오늘날 그의 고향 본에는 베토벤 박물관이 있고, 심지어 수성의 분화구에도 그의 이름이 붙어 있다. 그의 음악은 보이저 우주선을 타고 우주로도 여행을 떠났다.

음악 뒤에 숨은 인간

베토벤의 이야기가 이토록 매력적인 이유는 단순히 그의 음악적 천재성 때문만이 아니다. 그의 날것 그대로의 인간성 때문이다. 그는 엄청난 시련들을 겪었다. 학대받은 어린 시절, 점진적인 청력 상실, 가족의 알코올 중독, 개인적인 혼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사람들의 마음에 직접적으로 말을 거는 아름다운 음악을 계속 만들어냈다.

루드비히 반 베토벤은 완벽한 사람이 아니었다. 고집스럽고, 화를 잘 내고, 까다로울 수 있었다. 하지만 어쩌면 바로 그것이 그의 음악을 이토록 강력하게 만든 것일지도 모른다. 그는 자신의 모든 고난과 고통, 그리고 희망을 하나하나의 음표에 쏟아 부었다. 그의 음악을 들을 때, 우리는 단순히 아름다운 소리를 듣는 것이 아니다. 삶이 불가능해 보일 때도 포기하지 않았던 한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다.

다음에 베토벤의 음악을 들을 때는 고난이 무엇인지 알고 있던 사람으로부터 나온 것임을 기억하자. 그의 헝클어진 머리와 구겨진 옷은 그를 말썽꾸러기로 보이게 했을지 모르지만, 그의 음악은 때로는 가장 아름다운 것들이 가장 예상치 못한 곳에서 나온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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