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다칸 바바지의 신성화 (2019)
하이다칸 바바지의 신성화에 대한 간략한 설명
2019년에 탄생한 이 신성화는 그 시대 가장 정교하고 세심하게 완성된 작품 중 하나다. 모든 영적 안테나가 완벽한 조화를 이루며 나타나고, 각각이 놀라운 정확성으로 제자리를 찾아간다. 생생한 에너지 조각들의 출현은 하이다칸 바바지 신성화에서 처음 보이는 현상이었다. 이 에너지들은 마치 흩어진 영적 본질의 조각들처럼 밖으로 퍼져나가는 듯하다.
영적 중심부의 빛의 상징과 그것을 둘러싼 후광은 모두 신비로운 투명함을 지니고 있어, 이 세상 것이 아닌 무언가를 떠올리게 한다. 우리가 사는 물질 세계와는 확연히 다른, 낯선 감각이다.
발아래 물질 영역 안에서 영적 공동체와 조직의 상징들이 나타나는 것을 보면, 하이다칸 바바지 자신이 살아있는 사원으로 기능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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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화의 전반적인 구조를 알고싶다면 이 글을 읽어보세요. 인체의 각 부위에 따른 상징적 의미와, 자주 등장하는 영적 에너지의 상징들을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을 볼 수 있습니다. 2412_704c65-52> |
Quote
"나라는 존재는 특별할 것 없는 그저 공허한 것일 뿐입니다. 이 몸 또한 별다른 의미를 갖지 않죠. 다만 여러분이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거울 역할을 할 뿐입니다. 마치 불과 같아서요. 너무 멀리 있으면 따스함을 느낄 수 없고, 너무 가까이 다가가면 화상을 입을 수 있어요. 적절한 거리를 찾아보세요."
"진리와 단순함, 그리고 사랑의 길을 걷고 보여주는 것이야말로 인간의 가장 숭고한 의무이자 최고의 수행입니다. 부지런한 노력은 이 길의 핵심이죠. 게으름은 이 세상에서의 죽음과 같거든요. 오직 행동을 통해서만 업보를 이겨낼 수 있어요. 누구나 자신의 역할을 최선을 다해 수행해야 하며, 그 길에서 벗어나면 안 됩니다. 인류를 섬기는 것이 우리의 첫 번째 사명입니다."
"어느 나라 출신이든 상관없이 우리는 모두 평등합니다. 국경의 차이는 무의미해요. 우리는 하나의 공동체니까요. 질투와 시기는 해롭기만 하니 모두 버려야 합니다. 우리는 서로 하나이며, 신과도 하나랍니다."
"모든 것은 마음에서 비롯되고 마음이 창조해냅니다.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 가장 중요한 수행이에요."
"이런 시련의 시기엔 용기 있는 사람만이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지식 없이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지만, 순수한 마음 하나만으로도 모든 것을 성취할 수 있어요."
"선행을 실천하고 계속해서 좋은 일을 행하면, 잠도 편안하고 식욕도 좋아지며 나쁜 생각이 스며들지도 않을 겁니다. 그렇지 않으면 늘 남을 비판하는 삶을 살게 되죠. 업, 즉 의미 있는 행동만이 모든 악을 몰아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누구든 사랑을 품고 내게 오는 사람에게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큰 사랑으로 응답하겠습니다."
하이다칸 바바지 이야기
1970년, 인도의 외딴 히말라야 산기슭에서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하이다칸 마을 근처의 성스러운 동굴에 한 젊은이가 나타나면서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영성 운동이 시작된 것이다.
신비로운 등장
하이다칸 바바지의 이야기는 전설 같다. 마을 사람들은 카일라시 산 아래 성스러운 동굴에서 빛의 구체로부터 그가 나타나는 모습을 목격했다고 전한다. 18세에서 20세 정도로 보이는 젊은이였는데, 지상의 가족이나 출신이 전혀 없었다.
목격자들이 전하는 바에 따르면 정말 놀라운 현상이었다. 그의 모습이 눈앞에서 변하는 것 같았다는 것이다. 어떤 이들은 흰 수염이 흘러내리는 노인을 보았고, 다른 이들은 수염 없는 젊은이를 보았다. 더욱 이상한 것은 사람들이 동시에 여러 장소에서 그를 목격했다고 보고한 일이었다.
바바지의 가르침은 세 가지 근본 원칙에 집중되어 있었다. 진리(Truth), 단순함(Simplicity), 사랑(Love)이었다. 복잡한 철학을 피하면서 자주 이렇게 말했다. "모든 종교는 진리와 단순함, 사랑의 원칙 안에 포함되어 있다."
새로운 종교를 세우기보다는 제자들이 기존 신앙을 더 깊이 갖고 화합을 받아들이도록 격려했다. 모든 종교를 같은 바다로 흘러가는 강들에 비유했다. 서로 다른 길이지만 하나의 신성한 근원으로 향한다는 뜻이었다.
일이 곧 예배
바바지는 '카르마 요가'를 통해 영성 수행과 일상생활을 독특하게 결합했다. 힘든 일을 예배 자체로 보는 것이었다. "일이 곧 예배다"라고 제자들에게 자주 상기시키며, 평범한 일들을 성스러운 수행으로 바꾸어 놓았다.
그는 "옴 나마 시바야"(시바에게 귀명한다는 뜻) 염송을 강조했는데, 이것을 어떤 무기보다 강력한 영적 보호막이라고 설명했다. 수행자들이 자신의 전통에서 나온 성스러운 이름을 사용하는 것도 환영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일관성과 진정성이었다.
바바지와 함께하는 생활은 의미 있는 패턴을 따랐다. 새벽 3시에 일어나 성스러운 갠지스 강에서 찬물로 목욕한 후 명상과 화공 의식을 했다. 오전 5시에는 신도들을 축복하고, 6시에는 모두 함께 찬송을 불렀다.
오전에는 카르마 요가, 즉 아쉬람의 공동 작업에 참여했다. 정오에는 하루 한 끼 식사를 하고, 오후에는 또다시 일했다. 저녁에는 헌신적인 찬송과 짧은 가르침 시간이 이어졌다.
이런 리듬은 영성 생활이 평범한 활동들과 어떻게 자연스럽게 어우러질 수 있는지 보여주었다.
바바지 소식은 산간 마을을 훨씬 넘어 퍼져나갔다. 인도는 물론 서구에서도 방문객들이 찾아왔다. 꿈이나 환상을 따라온 이들도 있었고, 설명할 수 없는 직감에 이끌려온 이들도 있었다.
손님들 중에는 볼리우드 배우 샴미 카푸르, 교육받은 전문직 종사자들, 산간 마을 사람들, 서구의 영성 탐구자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대부분 그의 말보다는 존재 자체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많은 이들이 깊은 평화와 치유, 각성을 경험했다.
예언과 희망
바바지는 인류의 도전적인 미래에 대해 진지하게 말했는데, 이것을 '마하 크란티', 즉 위대한 혁명이라고 불렀다. 자연재해와 광범위한 갈등을 예언했지만, 이런 경고를 용기와 봉사, 영적 헌신을 고취하는 데 사용했다.
그의 궁극적인 메시지는 희망적이었다. 진리와 남을 위한 봉사, 영적 수행을 통해 사람들은 어떤 어려움도 헤쳐나갈 수 있다는 것이었다. 특히 가난한 이들을 섬기는 것을 신성한 봉사라고 강조했다.
1984년 2월 14일, 바바지는 명백한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자신의 죽음을 예언했고 제자들에게 자신의 영적 존재는 계속될 것이라고 확신시켰다. 그의 마지막 말은 "나는 항상 너희와 함께 있다"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