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콧 니어링의 신성화 (2019): 영적 에너지를 그리다

Scott Nearing Low
'이 신성화 이미지는 2019년에 'Tistory Blog'에 포스팅되었으며 자료 통합과 정리를 위해 업로드합니다.'

스콧 니어링의 신성화에 대한 간략한 설명:

그의 영적 중심부를 들여다보면, 참으로 실용적인 무언가가 눈에 띈다. 집 모양의 상징들이 육각형 에너지와 사각형 형태들과 어우러져 있는 모습이, 마치 잘 지어진 삶의 주춧돌들처럼 얽혀 있다. 그의 본질 자체가 이미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신성한 것과 일상적인 것이 결코 분리된 것이 아니라, 하나의 전체를 이루는 부분들이라는 것을.

그의 머리 위로는 정말 놀라운 구조물이 자리하고 있다. 마치 거대한 집처럼 보이는 그것은 여러 겹의 색깔로 칠해져 있어서 반짝이며 겹치는 듯하다. 이런 물질적 에너지의 상징들이 무중력으로 떠다니는 것이 아니라, 그의 어깨 위에 그대로 얹혀 있다. 잘 다듬어진 집의 대들보처럼 그곳에서 지지를 받고 있는 것이다. 그가 물질 세계에서 지속적인 무언가를 만들어내야 한다는 책임을 짊어지고 있는 그 무게감이 거의 느껴질 정도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그의 손에서 흘러나오는 에너지의 흐름이다. 재능과 목적의 흐름들이 위로 호를 그리며 올라가는 것을 따라가다 보면, 화면 왼쪽과 오른쪽 상단에 배치된 원형 작동 시스템들과 연결되어 있다. 그의 일상적인 노동, 집을 짓는 일과 삶을 이루는 모든 세속적인 것들이 그의 가장 높은 영적 열망과 결코 분리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방식이 말이다.

Quote

"진정한 단순함에 다가갈수록, 빼는 것이 더하는 것보다 소중하다."

"자연은 잠시 다녀가는 곳이 아니라 우리가 속한 집이다."

 "성공은 간절한 꿈과 절박함, 그리고 땀과 영감이 만들어낸 행운이다."

"가장 깊은 행복은 평범한 일상 속에 숨어있다."

"약탈과 침탈로 세워진 경제는 언젠가 스스로 무너진다."

돈보다 흙을 택한 교수

가끔 가장 흥미로운 사람들은 다른 이들이 보기에 조금 미친 것 같은 선택을 하는 사람들이다. 스콧 니어링이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 1883년 펜실베이니아 작은 마을에서 태어나 정확히 100년을 살았던 그는, 그 긴 세월 대부분을 다른 사람들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신기해할 만한 일들을 하며 보냈다.

편안한 출발

스콧은 이른바 '괜찮은' 집안에서 자랐다. 할아버지가 제법 성공한 사람이어서 니어링 가족은 하인들과 개인 교사까지 둔 큰 집에서 살았다. 보통 이런 어린 시절을 보내면 뻔한 인생 코스를 밟게 마련이다. 좋은 대학, 안정된 직업, 편안한 은퇴. 하지만 스콧에게는 다른 계획이 있었다. 물론 그 자신도 아직 그걸 모르고 있었겠지만.

머리가 비상했던 그는 펜실베이니아 대학교에 들어가 경제학을 공부했다. 1909년 박사 학위를 받고 명문 와튼 스쿨에서 가르치기 시작했다. 그의 강의실은 늘 만원이었다. 400명의 학생들이 돈과 사회에 대한 그의 이야기를 들으려고 몰려들었다. 모든 것이 계획대로 흘러가는 것 같았다.

입을 다물지 못하는 문제

하지만 스콧에게는 평생 따라다닐 문제가 하나 있었다. 마음에 걸리는 일이 있으면 가만히 있지를 못했다. 그 시절에는 열 살밖에 안 된 아이들도 공장과 탄광에서 일했는데, 스콧은 이게 잘못되었다고 생각했다. 강의 시간에도 이 문제를 다뤘고, 신문에도 글을 썼으며, 심지어 유명한 목사들에게까지 뭔가 해보라고 도전장을 던졌다.

대학 이사회는 대부분 부유한 사업가들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자신들을 부자로 만들어준 바로 그 산업들을 비판하는 교수를 달가워할 리 없었다. 1915년, 그들은 스콧을 해고했다. 해고 통지서는 학기 말에 왔다. 스콧이 다른 교직을 찾기에는 너무 늦은 시점이었다. 비겁한 수법이었지만, 이 일은 오히려 크게 역효과를 낳았다.

해고 소식은 큰 파문을 일으켰다. 전국의 신문들이 이 이야기를 다뤘고, 스콧의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 교수들까지도 이런 부당한 처사에 분노했다. 스콧을 좋아하지도 않던 한 심리학 교수는 여름 내내 그를 옹호하는 책을 쓰는 데 매달렸다. 스콧이 자신의 생각 때문에 해고될 수 있다면, 어떤 교수든 다음 차례가 될 수 있다는 걸 이해했기 때문이다.

반복되는 문제

펜실베이니아 대학교에서의 해고는 시작에 불과했다. 1917년에는 미국의 1차 대전 참전을 반대했다는 이유로 톨레도 대학교에서도 쫓겨났다. 이듬해에는 정부가 그를 선동죄로 재판에 넘겼다. 쉽게 말해 비애국적인 글을 썼다는 이유였다. 다행히 스콧에게는 공정한 판사와 그를 유죄로 판결하기를 거부한 두 명의 완고한 배심원들이 있었다.

한동안 스콧은 공산당에 가입했다. 공정함과 평등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공유한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산당원들조차 그가 너무 독립적이라며 내쫓았다. 스콧은 어디를 가든 아웃사이더가 될 운명인 것 같았다.

탈출

1932년, 스콧은 헬렌 크노스라는 젊은 여성을 만났다. 그보다 21살 어린 그녀는 콘서트 바이올리니스트가 되기 위해 공부하고 있었다. 둘은 함께 그들의 남은 인생을 결정지을 선택을 했다. 도시를 떠나 버몬트에서 땅을 일궈 살아보기로 한 것이다.

이건 단순히 신선한 공기와 채소를 원해서가 아니었다. 스콧과 헬렌은 '좋은 삶'이라고 부르는 철학을 발전시켰다. 현대 사회가 돈 벌기와 물건 사기에만 너무 집중해서 사람들을 불행하게 만든다고 믿었다. 그들의 해결책은 그 모든 것에서 한 발 물러나서 단순한 원칙에 기반한 삶을 만드는 것이었다. 자신의 음식을 기르고, 자신의 집을 짓고, 정말 중요한 일에 시간을 쓰는 것.

4-4-4 공식

니어링 부부는 일상생활을 위한 '4-4-4 공식'이라는 것을 만들어냈다. 하루에 네 시간은 농사와 건축 같은 육체노동에, 네 시간은 글쓰기와 음악 같은 지적 활동에, 네 시간은 공동체 활동과 교류에 쓰는 것이다. 너무 깔끔해서 현실성이 없어 보이지만, 그들은 수십 년간 이 원칙을 지켰다.

그들은 자신들의 땅에서 찾은 돌로 집을 지었고, 단풍나무에서 시럽을 뽑아 팔았으며, 모든 음식을 직접 길렀다. 모든 생명을 존중해야 한다고 믿는 채식주의자들이었다. 그들의 하루는 계절의 리듬을 따랐고, 자신들의 선택에 진심으로 만족하는 것 같았다.

모든 것을 바꾼 책

1954년, 스콧과 헬렌은 "좋은 삶 살기: 혼란스러운 세상에서 건전하고 단순하게 사는 법"이라는 책을 출간했다. 처음에는 거의 아무도 사지 않았다. 일반 출판사들이 관심을 보이지 않아서 자비로 출간해야 했다.

그런데 1960년대가 왔다. 전쟁과 물질주의에 신물이 난 젊은이들이 니어링 부부의 책을 발견하고는 자신들이 찾던 바로 그것이라고 여겼다. 1970년 재출간된 이 책은 첫해에만 5만 부가 팔렸다. 결국 17만 부 이상 팔리며 다섯 개 언어로 번역되었다.

비판의 목소리

니어링 부부의 이야기에 모든 사람이 감동한 것은 아니었다. 비판자들은 스콧과 헬렌이 부유한 집안 출신으로 실패할 경우를 대비한 신탁기금이 있었다고 지적했다. 은행에 돈이 있어서 안전망이 보장된 상황에서 단순한 삶을 선택하는 것과, 정말 가난해서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라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니어링 부부가 사회 문제를 해결하려고 머물러 있는 대신 도망쳤다며 위선적이라고 여겼다. 시골로 이주함으로써 수백만 명의 다른 미국인들이 겪는 빈곤, 인종차별, 도시 쇠락 같은 문제들과 마주하지 않아도 되었다는 것이다.

잘 산 인생인가?

스콧 니어링은 1983년, 100세 생일 직후에 세상을 떠났다. 헬렌은 1995년 죽을 때까지 그들의 일을 계속했다. 메인에 있던 그들의 농장은 좋은삶센터가 되어, 지금도 사람들이 찾아와서 그들의 철학을 배울 수 있다.

그들의 선택에 동의하든 하지 않든, 니어링 부부는 60년 넘게 자신들의 원칙에 따라 살았다. 관습적인 길에서 벗어나 완전히 자신만의 것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걸 보여줬다. 그들의 이야기는 가장 중요한 질문들을 떠올리게 한다.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정말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우리는 서로에게 무엇을 빚지고 있을까? 이런 질문들에는 쉬운 답이 없지만, 그래도 물어볼 가치가 있다.

결국 스콧 니어링은 겉으로 보이는 그대로의 사람이었다. 어려운 질문을 멈추지 않고 던지면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받아들이는 답에 만족하지 않는 사람. 그런 성향 때문에 해고당하고, 재판을 받고, 유명해졌다. 돈보다 흙을 택한 교수치고는 나쁘지 않은 유산이다.

Similar Posts

0 0 votes
Article Rating
Subscribe
Notify of
0 Comments
Oldest
Newest Most Voted
Inline Feedbacks
View all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