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화에 부정적인 에너지가 나타나는 이유와 그 의미 - 영적인 예술의 본질.
신성화를 그리는 과정, 그리고 내 역할
나는 신성화가 완성될 모습을 미리 예측할 수 없다. 신성화를 시작할 때의 나는, 신성한 지성이 이끄는 과정을 지켜보는 참관인에 가깝다. 다만, 내 몸이 그 결과를 잘 표현할 수 있도록 조율할 뿐이다.
신성화의 대상자나 사물에 대해 개인적인 견해나 판단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나만의 시각이 반영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결과에 대한 기대를 갖지 않으려 해도, 어느 정도의 기대는 자연스럽게 생기곤 한다.
그럴 때마다 내가 경이로움을 느끼는 순간은, 내 견해나 크고 작은 선입견과 무관한 결과가 나올 때이다. 신성화가 내 작은 생각들에 묶이지 않고, 오롯이 신성한 지성에 의해 그려진다는 경험이 쌓여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신성한 본질에 집중하지만, 때로는 의문이 생긴다
나는 신성화의 이름처럼 대상의 신성한 본질을 그리는 데 집중하고 있다. 그러나 때때로 내가 생각하는 ‘신성한 이미지’와는 거리가 있다고 느껴지는 그림이 나올 때가 있다. 신성화를 시작한 초기에는 이러한 현상이 매우 의아했다. “왜 구불구불하고, 어지럽고, 흐트러진 에너지 흐름이 그려질까?”
존재의 다층적 에너지 구조
우리의 에너지는 매우 다양하고, 여러 겹으로 중첩되어 있다. 긍정적인 에너지뿐 아니라 부정적으로 느껴지는 에너지 또한 존재한다. 물론, 모든 에너지는 본래 하나이지만, 다양한 원인에 의해 긍정 혹은 부정적으로 인식될 수 있다. 신성화는 이처럼 복합적인 에너지 구조 중 한 단면을 드러낸다.
그림에 드러나는 에너지 구조는 가장 대표성을 지니거나, 대상자에게 지금 가장 중요한 에너지일 때가 많다. 드물게는, 대상자의 특수한 상황에서 경고나 위급함을 알리기 위해 부정적인 에너지가 표출되기도 한다. 이 기준은 내가 정하는 것이 아니다. 영적 에너지와 연결된 자동 동작, 즉 신성한 지성의 인도를 통해 결정된다.
부정적 에너지가 드러나는 이유
나는 신성한 특성을 그리려 애쓰지만, 때론 그렇지 않게 느껴지는 그림이 나온다. 이런 에너지는 대부분 대상자의 영적 성장과 성숙에 중요한 단서를 품고 있다. 신성한 지성은 그 단서를 우리에게 보여준다. 그러므로 ‘좋다’ 혹은 ‘나쁘다’라는 이분법적 판단에서 한 걸음 물러나, 삶의 총체와 흐름을 더 멀리서 바라볼 수 있는 통찰이 필요하다.
신성화의 궁극적 의미: 균형과 조화, 사랑
우리 삶은 단순하지 않고 입체적이다. “어둠은 더 짙은 어둠 앞에서는 밝음이 되며, 밝음도 더 큰 밝음 앞에서는 어둠이 될 수 있다.“
신성화는 처음부터 나의 의지가 아니라 신성한 지성에 내맡기는 과정에서 시작된다. 그렇기에 그 결과를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태도에도 균형과 조화, 그리고 사랑이 깃들어야 한다. 신성한 지성 자체가 바로 균형, 조화, 사랑이기 때문이다.